
최길구의 세계일주 여행
티베트 횡단 여행 제2부
{칭하이, 티베트에서 돌아오는 길}
穿越西藏之旅 第二部
{青海, 西藏返回的途中}
Journey across Tibet Part 2
{Qinghai, On the way back from Tibet}
중국은 동북아시아 국가로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면적은 9,596,960km"로 러시아 캐나다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이며 한반도 면적의 43 배 크기로 북쪽으로 러시아, 몽골, 북한과 서쪽으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남쪽으로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과 국경을 접한다. 인구 13억 5천만 명(2015년)중 91%는 한족이며 9%는 55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는 베이징이며 최대 도시는 상하이 충칭시 광저우시로 22개 성과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 2개의 특별 행정구(홍콩, 마카오)로 구성되어 있고 공용어로는 중국어를 사용하며 통화는 위안화(CNY)로 209원 (KRW)이며 0.14 USD.이다.


칭하이성(青海省,Qinghai Province)은 중화인민공화국 서부의 성으로 칭하이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북동쪽에 간쑤성, 북서쪽에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남동쪽에 쓰촨성, 남서쪽에 티베트 자치구가 접해 있다.
성도는 시닝(西宁)이며 면적은 720,000km"로 한반도 면적의 3.2배 크기이고 신장,티베트, 내몽골자치구를 제외하고 중국에서 가장 큰 성이다.
한족 54%, 티베트족 23%,회족 16%,투족4% 등으로 구성된 인구는 5,92만명이다(2020년).
칭하이성은 티베트고원 북동부에 있으며 성의 중부 위수시에 황하,남서부에 장강,메콩강의 발원지가 있고 평균 해발고도는 3000m가 넘는데 탕구라산맥,쿤룬산맥 등이 가로지르며 칭하이 호수는 중국에서 가장 큰 염호이다.
시닝(西宁)시내에서 칭하이호 (青海湖) 얼랑젠(二郎剑)경구는 150km,헤이마허 (黑马河)는 220km,강차현(刚察县)은 230km 떨어져 있으며 북안 지역의 조도(鸟岛)는 한때 수십만 마리의 철새 서식지로 현재는 생태계 보호를 위해 관광객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지만 여전히 칭하이호를 대표하는 철새 서식지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티베트가 오늘날의 티베트 자치구(西藏自治区), 칭하이성 (青海省),쓰촨성(四川省),간쑤성 (甘肃省),윈난성(云南省) 으로 나뉘게 된 것은 수백 년에 걸친 역사적 과정의 결과로 전통적인 티베트의 세 지역인 우짱(卫藏, Ü-Tsang, 캄(康, Kham), 암도(安多,Amdo)가 중국의 행정구역으로 재편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티베트는 세 개의 큰 지역 {우짱(Ü-Tsang,卫藏: 라싸,시가체,갼체), 캄(Kham,康 :동부의 산악지대로 현재의 서부 쓰촨과 동부 티베트),
암도(Amdo,安多:북동부 초원지대로 현재의 칭하이 대부분과 간쑤 남부)으로 구분되었는데 오늘날의 티베트자치구는 전통적인 티베트 전체가 아니라 우짱과 서부 캄 일부만 포함하고 있다.
1724년에는 청나라는 티베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암도 지역을 분리하여 칭하이(青海) 로 편입시켰고 1727년에는 동부 캄 지역도 쓰촨성으로 편입시켰다. 이때부터 티베트는
우짱(라싸 정부),암도,쓰촨으로 분할되었다.
1905년 캄 지역에서 승려들의 봉기가 발생하자 청나라는 강경하게 진압한 후 1906년부터 자오얼펑(赵尔丰) 이 캄 지역을 직접 통치하면서 토착 귀족과 승원을 해체하고 중국식 현(县)을 설치하며 바탕(巴塘),리탕(理塘),캉딩(康定)등이 쓰촨성에 편입되었다.
1912년 청나라 멸망한 후 라싸 정부는 우짱을 실질적으로 통치했지만 암도와 동부 캄은 중국 군벌들이 계속 지배했고1939년 국민정부는 시캉성(西康省)을 설치하여 캄 대부분을 별도의 성으로 만들었습니다.
1955년 시캉성이 폐지되고 1958년 대부분의 캄 지역이 쓰촨성으로 편입되고 1965년 티베트자치구가 설립되었으나 전통적인 티베트 전역을 포함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우짱 대부분 → 티베트자치구로 ,동부캄→ 쓰촨성으로,남부캄→윈난성으로,암도 대부분→칭하이성으로, 암도 일부→간쑤성으로 확정되었다.
이름 기념하기 위하여 중국은 2026년 라씨 시내 곳곳에 시장자치구 설립 60년 경축 현수막을 내걸었고 중화민족은 한 가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 (Catchphrase)를 내세우고 있었다.오늘날 티베트 문화권은 하나이지만 행정적으로는 여러 성으로 나뉘어 있다.
라싸·시가체·에베레스트·카일라스는 전통적인 우짱이고,나취 (安多县 포함)는 역사적으로는 암도 문화권이지만 현재는 티베트자치구이며 거얼무· 차카염호·칭하이호·시닝은 전통적인 암도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여정은 우짱에서 출발해 암도로 이어지는 티베트 문화권을 횡단하는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라싸역을 떠나는 여정이지만 암도로 향하는 촐발역이기도 한 라싸역에서 2026년5월12일 오전 9시30분 시닝행 Z8982 열차에 탑승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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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30분, 라싸역 플랫폼에 시닝행 Z8982 열차가 조용히 들어왔다. 15일 전, 설렘과 긴장 속에 이곳에 도착했던 나에게 라싸는 이제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마음 한편에 오래 남을 특별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티베트. 포탈라궁의 장엄한 모습과 조캉사원의 깊은 향내, 세라사원의 승려들이 펼치던 변경문답, 얄룽창포강을 따라 이어지던 길, 그리고 에베레스트와 카일라스까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고산의 길 위에서 나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배웠고 티베트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통해 진정한 순례가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창밖으로 라싸의 풍경이 조금씩 멀어졌다.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번 여정은 티베트를 떠나는 귀로이면서도 새로운 여행의 출발이다. 칭짱철도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며 당슝과 나취를 지나 탕구라산을 넘어 전통적인 티베트의 또 다른 문화권인 암도(Amdo)로 향한다. 거얼무와 데링하를 거쳐 중국최대의 내륙호수인 칭하이호와 하늘을 닮은 차카염호, 천년 고성 단가얼, 그리고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성지인 타얼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라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티베트여, 고맙습니다. 당신이 내게 보여준 하늘과 산, 사람과 신앙은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티베트 횡단 여행 제2부, {{칭하이, 티베트에서 돌아오는 길}}이 라싸역에서 조용히 막을 올렸다.







오전 9시 30분, 라싸역을 출발한 Z8982 칭짱열차는 천천히 속도를 높이며 신들의 땅 라싸와 작별을 고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열차는 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여정의 막이 올랐다.
라싸를 벗어나자 창밖에는 티베트 고원의 웅장한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거대한 고원을 향해 바퀴를 굴린다. 객실 내에 은은하게 퍼지는 산소 공급 장치의 소리가 앞으로 마주할 혹독하고도 아름다운 고도를 예시하는 듯하다.
창밖으로 풍경의 밀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해발 4,000m를 넘어서며 멀리 연기를 뿜어내는 양바징 지열 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철로는 거대한 산맥의 실루엣을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차창에 이마를 대고 숨을 고르는 사이, 풍경은 점차 푸른빛을 잃고 거칠고 장엄한 황무지와 바위산으로 옷을 갈아입고 철도는 마치 거대한 자연의 화랑 속을 달리듯 녠칭탕구라산맥 (念青唐古拉山脉)과 나란히 이어졌다. 해발 7,000m가 넘는 설산들은 흰 눈을 이고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었고, 평균 해발 4,500m 이상의 광활한 고원은 끝을 알 수 없는 초원으로 이어졌다.
초원에서는 검은 야크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말과 소, 양들이 드넓은 대지를 자유롭게 누비고 있었다.
멀리 눈 덮인 봉우리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웅장함을 뽐내며 마치 자연이 펼치는 설산의 경연장을 보는 듯했다. 짙푸른 하늘과 순백의 설산, 초록빛 초원이 어우러진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에 마음을 빼앗긴 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사이, 어느덧 열차는 1시간 30분을 달려 오전 11시, 당슝(当雄, Damxung)역에 도착했다.
당슝(当雄, Damxung)은 라싸 북쪽 약 160km에 위치한 해발 약 4,300m의 고원 도시로 티베트어로는 '선택된 목초지'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광활한 천연 초원 덕분에 유목 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수많은 야크와 양을 방목하는 목축의 중심지이다. 또한 티베트 3대 성호 가운데 하나인 남초(納木錯, Namtso) 로 향하는 관문이기도 하며, 여름이면 푸른 초원과 설산, 유목민의 검은 천막이 어우러져 티베트 고원의 전형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비록 열차는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출발했지만, 당슝은 라싸를 떠난 여행자에게 티베트 고원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이정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칭짱열차는 다시 기적을 울리며 더 높은 하늘과 더 넓은 초원이 기다리는 북쪽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당슝역을 출발하여 오전 11시 40분경 당슝현 랑슈 구간 해발 4,300m 에 이르자 만년설과 야크 떼의 파노라마가 절정을 이룬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고 화각을 69mm 망원으로 당긴다. 바로 이곳이다.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압도적이다. 끝없이 이어진 철로와 나란히 달리는 G6 징짱고속공로 너머로, 하얗게 눈을 머금은 냰첸탕글라 산맥이 거대한 성벽처럼 열차를 호위한다.그 아래 드넓은 고원 초원에는 수백 마리의 검은 야크 떼가 점을 찍은 듯 흩어져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셔터 스피드를 1/1667초로 바짝 올리자 달리는 열차 안에서도 설산의 차가운 능선과 초원의 질감이 칼날처럼 선명하게 담긴다.
인간이 만든 고속도로와 철도, 그리고 대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 라는 생각이 든다.
당슝을 지나 고도가 더 높아지자 대지는 더욱 광활하고 적막해진다. 멀리 해발 4,600m 가 넘는 고지에 자리 잡은 푸른 호수가 차창 가득 밀려온다. 하늘을 담은 푸른 보석, 초나 호수(措那湖,Cona Lake)다
하늘과 구름을 고스란히 비춰내는 투명한 호숫가를 따라 열차가 달릴 때면 마치 기차가 호수 위를 부유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고산증으로 묵직해진 머리가 이 신비로운 풍경 덕분에 맑아지는 기분이다.
라싸를 출발해 322km를 달려온 열차가 드디어 오후 13시 13분 나취역(해발 4,513m)에 멈춰 선다.
나도 기차 문이 열리자마자 나취역에 내려 여행자들과 섞여 나취역으로 향한다.
뺨을 때리는 북티베트 고원의 차갑고 강한 바람이 내가 마침내 진정한 '세계의 지붕' 깊숙한 곳에 발을 디뎠음을 실감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나취역의 정차 시간은 3분, 승무원이 나에게 빨리 다시 승차하라는 소리를 질러 나취역과 인증샷을 제대로 남기기는 어려웠다.
나취시(那曲市, Nagqu)는 티베트 자치구 북부에 위치하며 나취(Nagchu,黑河)는 티베트어로 검은 강(黑河)을 뜻합니다.
대초원의 중심이자 바람이 머무는 북티베트의 관문 나취는
대자연의 웅장함을 품은 '하늘 아래 첫 동네'이자 세계에서 행정구역 면적이 가장 큰 39만~ 45만 ㎢ 로 한반도의 1.6배에서 2배에 달하며 스웨덴 국가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해발고도가 4,500m 이상으로 산소가 평지의 60% 수준에 불과하고 1년 내내 겨울 기후를 보이며 동남아시아로 흘러가는 거대한 살윈강(Salween River) 의 발원지가 바로 이곳이다.
나취는 혹독한 환경 탓에 사람이 살기엔 척박하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대자연과 고원 유목민의 삶을 마주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행지이다.칭장철도가 창탕초원 (Changtang Grassland)과 초나호수 (措那湖,Cona Lake)의 호숫가 를 따라 달려 기차 안에서도 창밖으로 푸른 보석 같은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나취를 출발한 칭짱열차는 하늘과 맞닿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길을 달리는 여정이다.
라싸에서 470km 철길을 따라 열차는 끝없는 고원의 신비로움을 품고 북쪽으로 거침없이 올라간다. 나취(Nagqu)를 지나면서 창밖의 풍경은 한층 더 비현실적 으로 변해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창탕초원(Changtang Grassland)은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빛 융단 같았고 그 위를 한가롭게 거니는 야크 무리들은 마치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 속 점들처럼 보였다.정신없이 풍경에 매료되어 갈 때쯤, 예고도 없이 푸른 보석 같은 코나 호수(Cona Lake)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4,6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이토록 맑고 거대한 호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투명한 푸른빛이었다. 철길이 호수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갈 때 기차 안의 모든 여행자가 탄성을 지르며 창문에 매달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광활한 초원과 푸른 호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오후 14시 58분, 열차는 마침내 이번 여정의 주요 이정표인 암도역(安多站,Amdo Railway Station:4,702m)에 미끄러지듯 도착했다.이 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유인 철도역 중 하나라는 명성답게 역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차갑고 희박하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 고원의 공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라싸에서 출발해 이곳까지 달려온 수백 킬로미터 의 여정이 단 일 초도 지루하지 않았던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암도(Amdo, 安多县)는 중국 티베트 자치구 나취시에 속해 있다. 평균 해발고도가 4,700~ 4,800m에 달하는 혹독한 고산 지대로 북쪽으로는 거대한 탕구라산맥(唐古拉山脉)이 장벽처럼 버티고 있고 남쪽으로는 야생동물의 천국이자 광활한 창탕 초원이 펼쳐져 있다.
티베트인들에게 암도는 단순한 행정구역을 넘어 티베트 전통 3대 문화권(우창, 캄, 암도) 중 하나를 뜻합니다."우창은 종교, 캄은 사람, 암도는 말(馬)"이라는 티베트의 오랜 속담처럼 암도 지역은 예로부터 끝없는 대초원을 달리는 명마(名馬)와 유목 문화로 명성이 높은 지역이며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루파를 창시한 '총카파'를 비롯해 현재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태어난 곳도 바로 이 전통 암도 문화권이다.
암도의 주요 명소인 코나 호수(Cona Lake)는 안도역을 지나기 전 차창 밖으로 마주하게 되는데 이 푸른 호수는 현지인 에게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성호(聖湖)'이다.
탕구라 패스(Tanggula Pass: 5,231m)는 안도현 북쪽에 위치한 해발 5,231미터의 고개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도 선로 지점이자 칭짱 불굴의 도전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다.안도현은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거친 야생의 땅이지만 칭짱철도가 개통되며 세상에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하늘길을 달린다는 칭짱 열차를 타면 세계에서 최고(最高, Highest)로 높은 역을 통과한다. 탕구라역이다.
칭짱 철도가 티베트 고원을 가로지르는 철도이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이 되었다.
안도역을 떠나 열차가 고도를 서서히 높이더니 마침내 2026년5월12일 오후 16시 17 분 대망의 탕구라역(Tanggula Station)에 도달했다.
라싸를 출발하여 565km를 달려온 지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 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꼭 내려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승무원에게 들은 대답은 무정하게도 정차 불가 통보였다. 여객열차는 서지 않고 화물 교행만을 위해 쓰이는 가혹한 환경의 무인역이라는 사실에 못내 서운함이 밀려왔다.
"곧 탕구라역을 통과합니다! 창밖을 보세요!"도착 5분 전,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승무원의 활기찬 목소리가 객실에 울려 퍼졌다. 서둘러 카메라를 켜고 창가에 바짝 붙었다. 열차가 역을 미끄러지듯 통과하는 시간은 단 몇 초 달리는 열차의 진동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역사를 찍으려니 초점이 사정없이 흔들렸고 가슴은 조급해졌다.그 짧은 찰나, 뷰파인더 너머로 하얀 역사 벽면에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색 글자가 시선을 강탈했다.
바로‘교통강국(交通强国)’ 이라는 네 글자였다. 찰나의 순간에 포착한 세계 최고의 역 탕구라역을 찍기는 했다.비록 초점은 흐릿하고 흔들린 사진 한 장이지만, 세계 철도 역사상 가장 가혹한 건설 비화를 품은 이 하늘길의 정점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짜릿함은 그 어떤 선명한 사진보다 깊은 잔상을 남겼다.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해발 5,068m의 영구 동토층 위에 이 거대한 철길을 놓기 위해 산소통을 메고 얼어붙은 땅을 파내려 갔을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는 중국의 무서운 집념이 그 캐치프레이즈 속에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는 듯했다.
칭짱철도(青藏铁路)는 동토 (凍土),고산병, 생태계 보호라는 3대 난제를 극복하고 2006년 7월 1일 전 구간 개통되었다. 당시 서구 전문가들은 5,000m 가 넘는 영구동토층 위에 철도를 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으나 중국은 선로 밑에 열전도 파이프를 심어 땅이 녹아 가라앉는 것을 막는 특수 공법 으로 이를 해결하였다.
해발 5,068m에 지어진 탕구라역은 건설 당시 너무나 희박한 산소(평지의 40% 수준)와 혹독한 기후 때문에 노동자들이 휴대용 산소통을 메고 작업해야 했고 사람이 상주하는 역사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결국 역무원이 없는 세계 최고 높이의 무인역으로 남게 되었는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하늘길’이 아닐 수 없다.
탕구라역의 독특한 외관은 티베트 전통 복장과 탕구라산맥 의 부드러운 능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라싸를 출발한 열차가 고도를 한껏 높이며 마침내 타오르는 듯한 기세로 세계의 지붕 해발 5,068m의 탕구라역 (唐古拉站)을 통과한다. 산소가 희박해져 객실 내에 산소 공급 장치가 조용히 작동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디젤 기관차가 거친 숨을 내쉬며 티베트 자치구와 칭하이성의 경계인 탕구라 고개를 넘어서는데 창밖은 그야말로 문명이 닿지 않은 태고의 땅이다 오른쪽 창가에 펼쳐진 만년설의 향연(탕구라 산맥 주봉 구간)을 마음껏 즐긴다.
탕구라 고개를 내려오며 열차는 북쪽을 향해 속도를 붙이고 오른쪽(동쪽)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 끝없이 이어지는 완만한 구릉 형태의 거대한 백색 장벽이 눈을 사로잡는데 이미 기차가 달리는 철로 자체가 해발 4,800m를 넘나들기 때문에 눈앞의 6,000m급 만년설 봉우리들이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나지막한 언덕처럼 다가온다.
어두운 갈색의 고원 토양과 그 위를 두껍게 덮은 순백의 눈이 대비를 이루며 탕구라산맥 특유의 웅장하면서도 쓸쓸한 독특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이 타이밍에 망원 렌즈를 당겨 그 압도적인 설산의 텍스처를 프레임에 담아낸다.
얄궂은 황무지 속 고독한 이정표 풍경에 취해 있을 무렵 저 멀리 황량한 고원지대 한복판에 붉은색 글씨의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지역을 개척한 이들의 땀방울이 서린 옌스핑 (雁石坪)마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주변으로는 가끔 풀을 뜯는 야크 떼나 티베트 영양만이 보일 뿐 인간의 흔적은 오직 이 철길과 나란히 달리는 칭짱고속도로 뿐이다.
오후 16시30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옌스핑역 (雁石坪站,Yanshiping Railway Station:4,721m)에 열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선다.
구글 지도를 검색하니 라싸를 출발하여 옌스핑역까지 611km라고 뜨니 먼길을 달려왔다.
과거신호소역이었던 이곳이 최근 여객 운송을 정식으로 시작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는데 창밖 플랫폼에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커다란 짐보따리를 든 장족 유목민들과 이들을 안내하는 제복 입은 역무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역사 벽면에는 "안전 강화, 개혁 활성화, 실천을 통한 영광" 이라는 붉은색 슬로건이 선명하게 적혀 있어 이곳이 '하늘의 길(天路)'이라 불리는 칭짱철도의 심장부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잠시 숨을 고른 열차는 이제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기다리는 퉈퉈허,거얼무,쿤룬산맥을 향해 다시 북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기차는 티베트 자치구를 완전히 벗어나 칭하이성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해발 4,500m~4,700m 대지를 달리는 칭짱철도 중 하늘과 맞닿았던 세계 최고 (最高)의 탕구라역을 뒤로하고 열차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옌스핑역을 통과했다. 만년설의 환송이 조금씩 멀어지자 창밖은 이내 지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멈춰 선 듯한 낯설고 황량한 동토의 대지로 모습을 바꾼다. 얼마쯤 달렸을까.
붉고 거친 흙빛의 대지 위로 나지막하게 스며든 물줄기들이 기차 선로와 나란히 달리기 시작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이자 수억 명의 삶을 키워내는 장강(양쯔강)의 위대한 시작점, '퉈퉈허(沱沱河)'의 상류 줄기다. 탕구라 산맥의 빙하가 녹아내린 물은 고원의 평평한 대지 위에서 거침없이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며 뱀처럼 구불구불한 핏줄 같은 물길을 만들어냈다. 거대한 강이 되기 전 날것 그대로의 가냘프고도 질긴 생명력을 품은 강의 소년기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기분이다.
낮게 가라앉은 흐린 구름은 대지의 적막함을 한층 더 깊게 만들고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척박한 아름다움은 숨을 멎게 한다.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이 고요의 땅을 오직 한 줄기 철로와 칭짱 열차만이 묵묵히 가로지르고 있다. 수천 킬로미터를 흘러 대양으로 향할 그 위대한 물줄기의 첫걸음을 배웅하며, 열차는 장강 발원지의 관문인 퉈퉈허역을 향해 속도를 높인다.
해발 4,547m의 하늘과 맞닿은 투오투오허역(沱沱河站)플랫폼에 발을 딛는 순간 표지판에 선명하게 적힌 '海拔 4547m' 라는 숫자가 하늘 아래 첫마을임을 온몸으로 실감 나게 만든다. 희박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이 이곳이 척박한 고원 지대임을 단번에 깨닫게 해준다.
이 투오투오허역(沱沱河站, Tuotuohe Station:4547m) 주변을 흐르는 투오투오 강 (沱沱河)은 수천 km를 흘러 바다로 향하는 양쯔강의 발원지이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대지와 웅장한 철골 구조물, 그리고 아스라이 보이는 지평선이 어우러져 묘한 엄숙함을 자아낸다.
고원의 이정표는 한자,티베트어, 영어(TUO TUO HE)가 함께 적힌 하얀 안내판은 왼쪽의 '우리(乌丽)', 오른쪽의 '카이신링(开心岭)'을 가리키며 멈추지 않는 여정을 안내하고 있다.
라싸를 출발하여 퉈퉈허까지 820km를 달려왔습니다.








양쯔강의 발원지 퉈퉈허 역 (해발 4,543m)에 기차가 잠시 멈춰 섰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끝없는 황량함과 그 속을 도도하게 흐르는 강줄기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양쯔강의 본류이자 발원지인 퉈퉈허. 해발 4,500m가 넘는 이곳의 공기는 희박하지만 지극히 투명했다. 기차 내부로 공급되는 산소 덕분에 숨은 편안했지만, 창 너머로 마주한 대자연의 스케일은 숨을 멎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제 열차는 거대한 탕구라 산맥의 기운을 뒤로하고 북쪽을 향해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퉈퉈허를 떠난 열차는 이내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무인 지대 커커시리 초원 (可可西里, Hoh Xil)으로 진입했다. 창밖은 온통 황금빛 평원과 저 멀리 지평선을 호위하듯 서 있는 만년 설산 뿐이다.
가만히 창밖을 주시하던 중 기적처럼 티베트 영양 치루 무리가 열차와 나란히 달리는 모습을 목격했다.야크,당나귀도 나란히 달린다.
칭짱철도가 이들의 이동권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거대한 고가 생태 통로 아래로 야생 동물들이 자유롭게 거니는 풍경은 감동 그 자체였다.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가장 아름답게 타협한 길을 지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쿤룬 산맥을 넘어 열차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만년설이 덮인 쿤룬산맥을 통과한다. 창밖의 풍경은 광활한 초원에서 거칠고 웅장한 바위산과 협곡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해발 4,000m대에서 내려와 서서히 기압이 안정되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칭짱고원의 거친 심장을 통과해 마침내 칭하이성의 요충지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다.
2026년5월 12일 오후 23시 30분 어둠이 짙게 깔린
거얼무역(格爾木站,Golmud Station: 2,829m) 플랫폼으로 열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퉈퉈허를 떠나 숨 가쁘게 달려온 약 430km의 여정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고 라싸역에서 거얼무역까지 15시간동안 무려 1,142km에 달하는 기나긴 철길을 달려왔다.
거얼무역 파란 바탕에 선명하게 박힌 '格尔木站 (Ge'ermu Railway Station)'과 '해발 2829m'라는 안내판이 나를 반겼다. 해발 4,500m 위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고도감에 비하면 이곳의 공기는 한없이 아늑하고 밀도가 높았다. 안내판 아래 스크린에는 조금 전 우리가 지나온 만년설산과 야생동물들의 터전을 상징하는 '动物家园' 풍경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지나온 그 위대한 자연을 기억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거얼무시(格尔木市, Golmud) 는 칭하이성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에 위치한 현급시로 티베트 고원에서 시닝, 라싸에 이은 제3의 도시이다. 거얼무는 몽골어로 하천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아득한 고비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오아시스 같은 신흥 공업·자원 도시이다.
거얼무의 주요 관광 명소로는 차얼한 염호(察尔汗 盐湖, Chaerhan Salt Lake), 쿤룬산맥 및 쿤룬 패스 (昆仑山脉/昆仑山口),커커시리 자연보호구역(可可西리, Hoh Xil),동타이지나이 호수 (东台吉乃尔湖) 등이 있다.
거얼무에서의 짧은 휴식이 끝나면, 이제 열차는 차이담 분지를 가로질러 시를 읊는 도시 데링하(델링하)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시닝으로 향할 것이다. 새로운 선로 위에서 만날 풍경을 기대하며, 칭짱고원에서의 강렬했던 기억을 가슴속에 깊이 접어둔다.












나는 티베트 횡단 여행 제2부 {칭하이,티베트에서 돌아오는 길}의 트래블 로그를 쓰기 위하여 라싸에서 시닝으로 돌아오는 칭짱열차 Z8982 티켓을 편안한 경와나 안락한 연와 대신 딱딱한 의자에 앉는 경좌 티켓을 구매하였다.
칭짱철도의 눈부신 풍경을 담기 위해서는 경와(硬卧,Hard Sleeper),연와(软卧,Soft Sleeper)보다는 경좌(硬座, Hard Seat)가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Z8982열차가 라싸역을 오전9시30분에 출발하여 경치가 아름다운 구간을 낮이나 저녁에 통과하기 때문에 침대 칸에 들어가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번거로운 일이 발생하여 의도적으로 경좌 티켓을 구매하였으나 21시간 30분이 걸리는 긴 열차 여행을 앉아서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라싸역에서 거얼무역까지 이미 15시간을 경좌(硬座,Hard Seat)에 앉아서 왔고 시닝역까지는 815km로 아직도 7시간 넘게 가야한다.
거얼무역에서의 짧고도 긴 20분간의 정차가 끝나고시계 바늘이 정확히 자정(24:00)을 가리키는 순간, Z8982 열차는 묵직한 기적 소리를 울리며 차가운 어둠에 휩싸인 거얼무역을 서서히 미끄러져 나갔다.
낮 동안 마주했던 고원의 거친 사막과 하얀 소금밭은 이제 차창 밖 짙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 열차는 밤새 고원의 심장부를 달려 데링하(Delingha)를 거쳐, 내일 오전 7시 정각에 목적지인 시닝역에 나를 내려줄 것이다. 밤을 도와 달리는 철길 위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플랫폼의 불빛이 멀어지자 객차 안의 소란스러움도 한풀 꺾였다. 차창 밖 칠흑 같은 어둠 때문인지 객실 안의 서늘한 조명 아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 좁고 딱딱한 경좌(硬座,Hard Seat) 에 몸을 구겨 넣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 칸(경와/연와)의 안락함은 없지만, 직각에 가까운 불편한 등받이에 기대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고단한 몸 뒤로 덜컹거리는 기차의 규칙적인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차가운 고원의 밤바람이 창틀 사이로 스미는 듯했지만 이내 피로가 밀려왔다.
덜컹거리는 열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깜빡 깊은 잠에 빠졌던 것 같다. 문득 한기를 느끼며 부스스 눈을 떴을 때 열차는 이미 밤의 중간 기착지인 데링하(德令哈)를 저만치 지나쳐 다시 황량한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시계를 보니 새벽의 한가운데다.
보이지 않는 창밖에는 시인 하이쯔(海子)가 노래했던 외롭고 황량한 데링하의 밤하늘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지나간 고원의 풍경과 다가올 시닝에서의 아침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다시 한번 얇은 외투를 여미고 차가운 시트 위에서 깊은 잠을 청해본다. 내일 아침엔 푸른 차카염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티베트 횡단 여행 제1부,2부 칭짱철도 1,956km 여정의 마침표]
🌅새벽 5시 무렵,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푸르스름한 어둠이 걷히며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빛이 스며드는 지평선 위로 밤새 숨어있던 고원 풍경의 거대한 실루엣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최종 목적지인 시닝역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자연의 신호다.하지만 딱딱한 경좌에 기대어 밤을 새다시피 한 탓에,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운 두 눈은 좀처럼 떠지지 않았다. 온몸을 짓누르는 고단함에 취해 비몽사몽 헤매고 있을 때쯤, 객차 안이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주변 승객들이 웅성거리며 선반 위의 짐을 내리고 외투를 챙기는 소리에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제 정말 내릴 시간이다.
🚂 [07:00] 1,956km의 대장정, 시닝역에 마침표를 찍다
멀리 시닝 시내의 건물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자 열차는 긴 호흡을 가다듬듯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시닝역 구내로 진입했다. 티베트 라싸를 출발해 이곳 시닝까지, 해발 5,000m의 고개를 넘고 황량한 동토를 가로지르며 무려 1,956km를 쉼 없이 달려온 철길이다. 그 거대한 칭짱철로 위에서 밤낮으로 바퀴를 굴려온 Z8982 열차는 우렁찬 기적 소리를 울리며 마침내 플랫폼에 멈춰 섰다.
2026년 5월 13일 오전 7시 정각.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시닝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21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던 치열하고도 경이로웠던 칭짱철도 여행이 비로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몸은 부서질 듯 피곤하지만, 아득한 고원 위를 달렸던 밤의 기억은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궤적을 남겼다.


[티베트 횡단 여행기 제2부
다시 시작되는 여정, 하늘의 거울 '차카염호'를 향하여]
새벽의 시닝역, 또 하나의 여행이 시작되다
2026년 5월 13일 오전 7시
21시간 30분 동안 달려온 칭짱열차는 마침내 시닝역에 도착했다.
21시간 30분의 대장정을 마친 시닝역 광장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밤새 쌓인 피로를 단숨에 씻어내 주는 듯했다.
하지만 여정을 멈출 여유는 없다. 밤새 기차에서 보낸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칭짱철도를 완주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나를 기다리는 또 하나의 목적지가 있었다.
나의 다음 목적지는 '중국의 우유니'라고 불리는 하늘의 거울, 차카염호(茶卡盐湖)다.
시닝역 출구를 나오자 왼편에는 장거리 버스가 출발하는 시닝종합객운센터(西宁综合客运中心/汽车客运旅游集散 中心)가 오른편에는 시내버스와 근교 노선이 운행되는 시닝역 버스종합허브/시닝역버스 정류장(西宁站公交枢纽站)/ (西宁站公交汽车站)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차역과 바로 연결된 터미널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딱딱한 침대와 경좌에서 밤을 지새운 탓에 다리는 무거웠지만, 에메랄드빛 소금 호수 위로 솜사탕 같은 구름이 끝없이 비치는 차카염호의 풍경을 상상하니 묘한 설렘이 다시금 솟구쳤다.
터미널 앞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병차 기사들이 "차카염호! 80위안!"을 외치며 여행객들을 붙잡고 있었다. 끈질긴 호객을 뒤로한 채 터미널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대합실은 칭하이성 곳곳으로 향하는 현지인과 여행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매표창구에서 오전 8시 30분 출발 차카행 버스표를 구입하고 대합실 4번 게이트 앞에서 기다렸다.
예상치 못한 밴 승차
출발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4번 게이트 전광판에는 끝내 '탑승 중'이라는 안내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순간, 한 중국인이 다가와 차카염호로 가는 것이 맞냐고 묻더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를 따라간 곳은 4번 게이트가 아닌 터미널 안쪽의 다른 승차장이었다.
그곳에는 9인승 밴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에게 버스표를 보여주자 아무런 설명 없이 타라고 한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내 티켓을 확인하고 태우는 것을 보니 문제는 없겠지 싶었다.
이미 네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나도 자리를 잡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사에게 다시 한번 "차카염호?"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밴은 터미널을 빠져나와
서쪽을 향해 300km 고원의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티베트 고원의 문을 열다
밴은 먼저 G6 징짱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도로 상태는 매우 훌륭했고, 차는 시원한 속도로 고원을 가로질렀다.
일월산 톨게이트(日月山 收费站)로 빠져 나온 밴은 G109 칭짱공로로 들어서고 국도 옆 일월산(日月山)주변의 험준한 산악 고원 지대를 지나가는데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오르며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이제부터는 티베트 고원의 진짜 풍경이 시작된다.
해발 약 4,000m의 일월산은 중국 역사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동쪽은 한족의 농경문화가 펼쳐지고, 서쪽부터는 티베트 유목문화가 시작되는 경계선이다.
당나라 문성공주가 송첸감포에게 시집가던 길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거울을 던졌다는 전설도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내려오자 '물이 거꾸로 흐르는 강'이라는 뜻의 도당하(倒淌河) 가 나타났다.
중국 대부분의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지만, 이곳의 작은 강은 반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칭하이호로 들어간다.
도로 양옆으로는 오색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이고, 야크와 양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티베트 초원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을 입구에는 문성공주의 전설을 기념한 도당하경구 (倒淌河景区,Daotanghe Scenic Area)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문성공주 석상은 티베트를 바라보며 한 손에 거울을 들고 서 있었고 한,당 시대 양식으로 재현된 누각과 성문, 회랑은 1,300년 전 당번고도의 분위기를 그대로 되살려 놓은 듯했다.
전설은 말한다.
문성공주가 일월산에서 마지막으로 고향을 바라보며 흘린 눈물이 강이 되어 서쪽으로 흐른 것이 바로 도당하라고.
찰한초원(察汗草原) 끝없는 초원의 파노라마
도당하를 지나자 밴은 칭하이호 남쪽 산맥 뒤편을 따라 이어지는 S102 지방도로로 들어섰다.
이 길은 관광버스보다 현지 차량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길이었다.
끝없는 찰한초원(察汗草原)이 360도로 펼쳐졌다.
칭짱고속도로(G6)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이 2차선 지방 도로는 고원의 굴곡진 능선을 그대로 타고 오르내리는데 끝없는 지평선과 유목민의 찰한초원(察汗草原)풍경을 사방 360도 파노라마 뷰로 볼 수 있다.
초록빛 평원과 부드러운 능선의 산들이 넘실거리는 초원은 수백 마리의 검은 야크(牦牛)와 하얀 양 떼가 도로까지 내려와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곳곳에 흰색 티베트식 천막 게르와 장족 유목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축을 모는 진짜 삶의 현장이 펼쳐진다.
차 창문을 내리니 한적함이 주는 압도적인 개방감이 밀려들어 온다.고원의 맑고 서늘한 바람과 풀 내음이 그대로 들어오는데 가끔씩 길을 건너는 가축 무리 때문에 차를 잠시 멈춰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는데 아~~ 하는 즐거운 비명이 입에서 저절로 터져나온다.
오히려 이런 시간이 이 광활한 자연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해주었다.
지평선 끝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대초원과 지평선 끝에 아스라히 걸려있는 웅장한 산맥,야생 야크와 양 떼, 고속도로와의 평행선이 주는 기하학적 풍경등이 어울어져 티베트 고원의 광활함과 유목 문화의 정수를 가장 가깝고 조용하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을 만끽하며 달리는 티베트 고원의 찰한초원은 사진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압도적인 세계였다.
이 찰한초원 길 끝에 아스라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보이던 유목민 게르나 주택이 아닌 큰 마을이란 것을 직감한다. 차카진이었다.
오전 8시 30분 시닝을 출발한 밴은 약 네 시간 반을 달려 오후 1시, 차카진에 도착했다.
라싸에서 밤을 새워 시닝까지 달려왔고, 다시 차카까지 이동했다.
불과 하루 남짓한 시간 동안 이동한 거리는 무려 2,250km 28시간을 달려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예약해 둔 산수이호텔은 도로변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체크인을 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리셉션 직원이 예약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중문 예약확인서와 선불 결제 영수증까지 보여주자 직원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알고 보니 차카진에는 '산수이호텔'이 두 곳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찾아온 곳은 다른 차카 산수이 호텔이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자신의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약 4km 떨어진 내가 예약한 차카 산수이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밴 기사도,나도 차카진에 같은 이름의 호텔이 두 곳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생긴 작은 해프닝이었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오후 1시 30분, 마침내 예약한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차카염호(茶卡盐湖, Chaka Salt Lake)는 '중국의 우유니'이자 '하늘의 거울(天空之镜)'이라는 별칭을 가진 중국의 대표적인 고원 소금 호수로 중국 칭하이성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 우란현 차카진에 위치하며 칭하이성의 성도인 시닝시(西宁市)에서 서쪽으로 약 298km 떨어져 있다.
차카염호는 티베트고원 북동쪽에 위치한 차이다무 분지(柴达木盆地)의 동쪽 끝 구역으로 해발 3,100m의 고산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약 105㎢ ~154㎢ 규모로 계절과 강수량에 따라 면적이 유동적으로 변하며 최대 길이가 16km, 최대 폭 9km의 길쭉한 타원형 구조로 되어 있다.
바닥의 결정층 두께는 평균 5m~9m에 달해 중국 최대의 천연 소금 생산지 중 하나이기도하다
과거 생산된 소금을 운반하던 철로를 활용해 호수 중심부까지 들어가는 미니 관광 기차를 운행하는데 호수 주변에 소금으로 만든 거대한 조각상들 이 전시된 예술 구역이 조성되어 있다.
바람이 없고 맑은 날에는 호수 표면이 완벽한 거울이 되어 하늘과 주변 만년설산의 풍경을 그대로 비춰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물이 자작하게 차올라 거울 효과가 극대화되는 7월~ 8월 여름철 방문이 가장 좋고
강렬한 햇빛을 막아줄 선글라스와 소금물로 부터 발을 보호할 고무장화나 아쿠아슈즈 준비는 필수적이며 선명한 사진을 위한 빨간색 등 원색 계열의 의상이 좋다고 한다.

폭풍우 속의 순례, 차카염호 (茶卡盐湖)에서 마주한 지옥과 천국
28시간의 대장정, 그리고 불길한 예감
라싸에서 밤을 새워 시닝까지, 그리고 다시 차카까지. 불과 하루 남짓한 시간 동안 무려 2,250km를 28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몸은 천근만천근 피곤했지만, 석양이 지면서 흰 소금밭과 호수 전체가 붉고 노란 황금빛으로 물드는 차카염호를 보려면 오후 투어가 좋다는 호텔 직원의 조언이 있었다. 간단히 점심을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 차량을 이용해 4km 거리의 국가 4A급 여유 경구 (国家4A级旅游景区)로 향했다. 경구 입구에 도착하자 28m 높이의 철골 구조물인 '차카염호 관광탑(Sightseeing Tower)'이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타워 전면에는 청색으로 '차카다칭옌(茶卡大青盐)'이라는 다섯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소금 결정이 크고 옅은 청색을 띠어 '대청염'이라 부르는데, 예로부터 약재나 고급 소금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20위안의 입장료를 내고 타워 꼭대기에 서니, 광활하게 펼쳐진 하얀 염호와 푸른 하늘, 저 멀리 설산까지 360도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서쪽 하늘에 짙은 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일진광풍, 사라진 황금빛 꿈
서둘러 타워를 내려와 티켓 오피스에서 입장료와 관광열차 왕복 통합권(160위안)을 끊었다. 호수 안쪽의 '천공지경 관경 플랫폼(天空之镜观 景平台)'까지는 편도로 무려 4.2km에 달해 걸어가기엔 무리였다. 천공지경역에서 열차에 몸을 싣고 중간역들을 지나 종점인 차카신역 (茶卡心站)에 내렸다.
전망대에 도착한 순간, 아까 타워에서 보았던 서쪽의 먹구름이 이미 하늘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곧이어 몰아친 폭풍우와 일진광풍은 온 사방을 뒤흔들었다.
아뿔싸!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유니와 더불어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수만리를 달려왔건만, 꿈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듯했다.한국에서 초대형 태풍도 겪어보았지만 이런 폭풍우는 생전 처음이었다. 몸을 가누고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대로 허망하게 맨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금밭으로의 투쟁, 그리고 미친 자들의 연대
전망대 위는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주변 중국인들을 따라 구두 위에 탈부착식 빨간 고무장화를 장착했다.거센 폭풍우에 몸이 날아갈 것 같았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귓전을 강타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이를 악물고 하얀 소금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배낭 위에 껴입은 우비는 찢어져 너덜너덜해졌고, 소금물이 파고들어 무릎부터 엉덩이까지 바지가 흠뻑 젖었다.
젖은 바지는 이내 소금기로 딱딱하게 굳어 걸을 때마다 마른 동태마냥 버석버석 소리를 냈다. 그토록 아름답다던 천공지경이 내게는 지옥의 나락처럼 느껴졌다.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마침내 여러 나라와 도시 이름이 적힌 화살표 표지판, '하늘의 거울 이정표(天空之镜路标)'에 도달했다."아아, 드디어 내가 이곳에 섰구나!"마치 인류 최초로 달나라에 발을 디딘 것 같은 짜릿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돌아보니 이 폭풍우 속에서 미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곁으로 다가온 또 다른 여행자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인증샷을 부탁했고, 나 역시 그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리는 이 정복의 순간을 배경으로 의기양양하게 기념사진을 남겼다.
시련의 끝, 심연의 늪으로
전망대 주변에는 이정표 외에도 열기구 조형물, 목요라상마 여신상, 오보(祭湖敖包), 그리고 거대한 야외 소금 조각상들이 우뚝 서 있었다.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마치 성지에 온 순례자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이 풍경들을 눈에 담은 뒤, 다시 차카신역에서 열차를 타고 출발역으로 돌아왔다.
관광열차에서 내린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찢어진 우비 사이로 스며든 소금물이 속옷까지 적셨고, 빳빳하게 굳은 옷들은 움직일 때마다 버걱거렸다.순간 온몸을 강타하는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졌다.
"차카염호여, 당신은 어찌하여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주절주절 독백을 내뱉으며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동태처럼 굳어버린 옷가지들을 욕조에 던져놓고, 소금기에 절어 쪼글쪼글해진 몸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 비로소 몸과 옷의 소금기가 녹아내리는 '해동과 해독'의 시간이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며칠간 쌓인 살인적인 피로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차카의 짙은 어둠과 함께 깊고 깊은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다오탕허의 눈물, 길바닥에서 마주한 11시간의 사투
1. 무너진 계획,
오늘은 차카진 객운점에서 버스를 타고 80km 떨어진 청해호 서단에 위치한 흑마하 (黑马河, Heimahe,)로 갈 예정이다.
차장공로(恰江公路)라고 불리는
성도(省道)S307은 궁허현 차브차진에서 시작하여 칭하이호 기슭에서 끝나는 짧은 도로지만 관광 교통의 동맥이다.
이 도로의 상피산 야커우 (橡皮山垭口:3,817m)고개를 험준하게 넘어가야 하는 고난도 구간을 해소하기 위해 25년10월 ~26년7월까지 모든 차량 통행을 금지(全封闭施工) 시키고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공사를 하는동안 주변 구간인 다오탕허 도로로 우회해야 하는데 이 길은 다오탕허진 (倒淌河镇)에서 청하이후(青海湖)를 거쳐 차카(茶卡)를 연결하는 지방도다.
헤이마허까지 310km를 우회해야 하는데 무려 4시간 넘게 걸린다고 한다.
상피산(橡皮山,Rubber Mountain)은 칭하이호와 차카염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산으로 상피산 야커우 (橡皮山垭口:3,817m)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지만 고도가 높고 경사가 가파른 험준한 구간이다.
산수이호텔 리셉션 직원이나 차카염호에서 호텔로 돌아올 때 탔던 택시기사가 이 도로가 봉쇄되어 있다고 나에게 말해 주었지만 한국처럼 짧은 구간 공사중이라 공사 구간만 우회하면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차카염호의 지옥 같은 폭풍우를 견뎌내고 겨우 몸을 추스른 오전 6시 30분, 다음 목적지인 흑마하(黑马河)로 가기 위해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7시 정각에 도착한 차카 객운점 (茶卡客运站)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도로 폐쇄로 인해 흑마하행 버스는 전면 운행 중단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황해하며 터미널 밖의 택시들을 붙잡았지만 기사들은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간혹 가겠다는 택시는 도로가 막혀 크게 우회해야 한다며 터무니없는 폭리 요금을 요구했다.
발이 묶여 초조해하던 중, 시닝(西宁)행 버스 기사가 한 줄기 빛 같은 제안을 해왔다."시닝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오탕허(倒淌河)'에서 내리면 흑마하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이다."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시닝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것이 더 거대한 고생길의 서막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2.다오탕허의 길바닥에 버려지다.
차카진에서 찰한초원을 통과하여 다오탕허까지
2시간이 걸렸다.버스 기사가 헤이마허 행 버스를 타는 곳이라며 내려줬는데 내가 마주한 다오탕허는 그야말로 황량함 그 자체였다.
기사의 말과 달리 흑마하로 가는 노선버스는 고사하고, 중국 특유의 합승 차인 '병차(拼车)' 조차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낯선 이방인을 태워줄 차량은 존재하지 않았다.수만리 타국 땅, 해발 3,000m가 넘는 고원의 칼바람 속에서 완전히 고립 되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아무리 봐도 버스 정류장이나 병차는 보이지 않았다.말도 안 통하고 길을 잃은 나는 갈 곳 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참아왔던 서러움과 막막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렇게 텅 빈 길바닥에서 캐리어를 붙잡고 꼬박 2시간을 눈물로 보냈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마저 야속하게 들리던, 내 인생 가장 길고 외로웠던 2시간이었다.
3.절망 끝에 만난 기적, 귀인을 만나다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퉁퉁 부은 눈을 닦아내고 필사적인 심정으로 근처의 작은 가게 문을 두드렸다. 번역기와 몸짓 발짓을 동원해 흑마하로 가야만 하는 나의 절박한 상황을 눈물로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는지,다오탕허진 도로변에 있는 편의점 주인의 주선으로 현지 개인 승용차를 섭외할 수 있었다.기사가 300위안을 요구하여 내가 200위안을 주겠다고 하자 고속도로 통행료 30위안을 더 달라고하여 230위안에 흥정이 끝났다.
그 따뜻한 차 안에서 비로소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다오탕허(倒淌河)에서 헤이마허 (黑马河)까지의 거리는 120km 로 칭하이호1호 공로(青海湖1号公路,Qinghai Lake No.1 Highway)를 타고 1시간 40분이 걸렸다.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 여행자의 처량한 몰골에 선뜻 자신의 차를 내어준 고마운 기사와 차량을 주선해준 다오탕허진 작은 편의점의 아주머니에게 감사를 표한다.그 따뜻한 차 안에서 비로소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4.11시간 만에 도달한 흑마하의 대지
우회 도로를 돌고 돌아 마침내 흑마하에 발을 디뎠을 때, 시계 바늘은 이미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 6시 30분에 길을 나선 지 무려 11시간 만이었다.불과 80km를 가기 위해 차카객운점에서의 버스 전면 운행 중단, 택시 승차 거부, 사기성 요금 요구, 길바닥에서의 고립과 2시간의 폭풍 오열까지… 말 그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하루였다. 비록 몸은 유령처럼 만신창이가 되었고 영혼까지 탈탈 털린 여정이었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헤이마허 칭하이시하이호텔 (青海湖西海酒店,Qinghai Lake Xihai Hotel:No.18, Market Town,Heimahe Township,Gonghe County, Qinghai)에 체크인을 하고 여장을 풀었다.











칭하이호(青海湖,Qinghai Lake)는 중국 최대의 내륙 염호로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다. 면적은 4,400km²~ 4,500km² 정도로 제주도 면적(약 1,850km²)의 약 2.4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이며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도로의 총길이도 약 360km에 달한다.
해발 약 3,200m 이상의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수평선 너머로 호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다 같은 느낌을 주며 아름다운 경치와 독특한 생태계를 자랑한다.
청해호는 국가 지질공원 (National Geopark of China)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국가5A급 여유 풍경구로
호수 서쪽에 위치한 니아오다오 조도(鸟岛)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며 헤이마허(黑马河), 샤다오(沙岛), 호수 동부의 어얼하이(洱海)등 주요 관광 구역들로 나뉘어져 있다.

광풍과 비바람을 뚫고 마주한 ‘일출의 성’, 흑마하(黑马河) 경구 투어 잔혹기(殘酷記)
1.고난의 길 끝에 마주한 흑마하의 부름
헤이마허 청해호서해호텔에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선 순간, 창문 너머로 청해호가 거짓말처럼 맞닿아 있었다. 창을 열자 흑마하 경구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고, 마치 나를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부르는 것만 같았다.사실 내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바로 어제, 차카염호에서 살을 깎는 듯한 광풍에 휩싸여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지 않았던가. 게다가 오늘은 이곳 흑마하에 오기 위해 다오탕허를 거치면서 체력이 바닥나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고난까지 겪었다. 온몸이 쑤시고 천근만근 무거워 정상적인 걸음조차 걷기 힘든 상태였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모든 고생과 고통마저도 길을 떠난 여행자가 기꺼이 받아들이고 겪어내야 하는 숙명(宿命)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눈앞에 그토록 갈망하던 흑마하 경구를 두고, 온종일 호텔 방구석에 누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호텔 문을 박차고 나와 흑마하를 향해 당당히 걷기 시작했다.호텔에서 흑마하 경구까지는 약 2km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비바람을 뚫고 터덜터덜 30분 정도를 걸었을까, 마침내 흑마하 경구 티켓 오피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압도한 것은 엄청난 크기의 대형 조형물이었다. 그 위에는 ‘청해호·헤이마허(青海湖·黑马河, Qinghai Lake Heima River)’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표지판이 서 있었다. 이 표지판이 세워진 호숫가 구역은 매일 아침 환상적인 일출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으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일명 ‘헤이마허진 일출의 성 (黑马河镇 日出之城)’이라는 아름다운 별칭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그 표지판 바로 옆으로는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었는데, 바로 "칭하이-티베트 특별 노선" 의 이정표였다. 이곳에서부터 저 멀리 티베트의 성지 라싸 (Lhasa)까지의 거리가 무려 2,100km임을 나타내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아득한 대륙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그 표지판 앞에서, 수많은 여행객이 감탄을 터뜨리며 인증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 역시 그 경이로운 분위기와 틈새에 끼어 바쁘게 셔터를 누른 뒤, 다시 티켓 오피스로 향했다.
2.판첸 아오바오(班禅熬包), 수백 년 신앙이 깃든 보석 같은 땅
흑마하 경구 티켓 오피스 앞에는 이곳의 역사와 유래를 담은 ‘판첸 아오바오 풍경점 (班禅熬包 风景点)’ 소개 대형 조형물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안내판에 적힌 상세한 설명을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설명서에 따르면,판첸 아오바오 는 헤이마허진에서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칭하이호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평평하고 사방이 탁 트인 지형 덕분에 호수와 하늘이 그대로 맞닿아 있어, 칭하이호의 일출을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장소로 꼽힌다. 특히 헤이마허진은 호수를 순환하는 도로의 거대한 요충지로, 북쪽으로는 차카염호와 새섬(Bird Island), 동쪽으로는 시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히 교통의 길목일 뿐만 아니라, 장엄한 자연과 깊은 티베트 문화가 어우러진 숨겨진 보석 같은 땅인 것이다.이곳의 핵심인 ‘판첸 라제’라는 이름에는 티베트 신앙과 오랜 역사적 전설이 깃들어 있다. 티베트어로 ‘라제(Lhaze)’는 돌무더기를 쌓고 기도 깃발과 화살을 꽂아 올린 제사터를 의미하는데, 이는 거대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과 축복을 기원하는 순수한 마음을 상징한다. 이를 몽골어로는 ‘쭤바오’라고 부르며, 여기서 오늘날의 ‘판첸 아오바오’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판첸 오보의 역사는 무려 고대 투보(Tubo)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거친 대륙의 군사 도로 표지석으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영웅들을 기리고 하늘의 신을 숭배하는 신성한 성지로 발전했다.여기서 ‘판첸’이라는 이름은 티베트 불교의 심장인 겔룩파 종파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판첸 에르데니’는 산스크리트어, 몽골어, 티베트어가 결합된 고결한 칭호로, "귀한 보석과 같은 위대한 성인"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제10대 판첸 라마가 이곳을 두 번이나 직접 방문하여 거대한 호수를 향해 성대한 제사를 지냈으며, 이 역사적 사건 덕분에 이곳은 더욱 깊은 종교적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 지금도 매년 티베트력 5월 15일이 되면, 지역 주민들이 일제히 이곳에 모여 라제(Lhaze)를 형형색색의 오색 기도 깃발과 신성한 화살, 그리고 존경의 의미를 담은 카타(의례용 흰색 스카프)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리고 호수의 신에게 바치는 바다 숭배 의식과 격렬한 말 경주를 개최하여, 한 해 동안의 좋은 날씨와 마을 사람 및 가축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것이 바로 수 세기 동안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온 흑마하만의 독특하고 귀중한 민속 풍습이다.
3.대자연이 펼치는 시(詩)적인 경이로움
문화유산과 신앙의 깊이 외에도, 판첸 오보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로 명성이 자자하다. 온 세상이 숨을 죽인 새벽녘, 호수가 미처 잠에서 깨어나기 전부터 하늘은 이미 은은한 분홍빛 여명으로 대기를 물들인다.이윽고 태양이 거대한 호수 위로 서서히 떠오르면, 눈부신 황금빛 햇살이 지평선 저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진다. 햇빛을 받은 푸른 물결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의 비늘처럼 정교하게 잔물결을 일으키며 반짝이는데, 그 광경은 마치 태초에 세상이 창조되던 순간을 연상시킬 정도로 장엄하고 경이롭다. 날씨가 흐려져 천둥번개가 치고 거친 바람이 불어올 때도 이곳의 아름다움은 죽지 않는다. 부드러운 바람과 함께 옅은 물안개가 호수 위로 잔잔하게 드리우면, 풍경은 금세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변모하며 또 다른 시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해질녘이 되면 붉은 석양이 거울 같은 호수 표면에 그대로 투영되고, 저 멀리 유목민들의 텐트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와 함께 평화로운 전원적인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나온다. 밤이 깊어지면 하늘에서는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나지막하게 드리워져 우주 한가운데 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비록 계절에 따라 일출을 보는 시간은 조금씩 달라질지언정, 흑마하의 풍경은 언제나 변함없이 고요하고 영원하며 이곳을 찾는 모든 방문객의 영혼을 단숨에 매료시킨다.안내판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축복의 말을 건네며 끝맺고 있었다."모든 방문객 여러분께서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하시고, 칭하이 호수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마음속에 영원한 시로 간직하시기를 기원합니다!"이토록 정성스럽고 자세하게 쓰인 안내를 읽고 나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기대감이 솟구쳤다. 매표소에서 마침내 티켓팅을 마치고, 칭하이호의 깊숙한 속살을 직접 눈에 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창밖을 보니 과연 흑마하 (黑马河,Black Horse River) 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청해 호숫가로 향하는 길 양옆에는 기풍 당당한 검은 말 조형물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고, 그 조형물 사이사이로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 거친 숨을 쉬며 살아 움직이는 진짜 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멈춰 선 조각상과 생명력 넘치는 실제 말들이 이루는 묘한 대조는 내가 정말로 거친 서북부의 땅에 와 있음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4.두 문화의 공존, 제해대 (祭海台)와 제해정(祭海亭)
셔틀버스가 흑마하 경점 안쪽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자, 마침내 광장 중앙에서 거대한 헤이마허 제해대 (祭海台) 불탑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제해대’는 티베트족 목축민들이 옛날부터 칭하이호를 단순한 호수가 아닌 영험하고 신성한 바다, 즉 신해(仙海)로 여기며 매년 호수의 신에게 평안과 안녕을 빌던 전통 종교 제단이다. 화려하게 문양이 조각된 기단 위에는 순백의 티베트식 스투파(불탑)가 우뚝 솟아 있었고, 그 옆으로는 오색 빛깔의 수많은 타르초(기도 깃발 탑, 룽따)가 숲처럼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다. 타르초들은 매서운 호수 바람에 세차게 나부끼며, 그 펄럭임으로 세상 모든 곳에 부처님의 말씀과 불경을 널리 퍼뜨리고 있었다. 일출 명소로만 알려진 헤이마허 호숫가 바로 윗자락에 이토록 장엄한 핵심 신앙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이 대형 티베트식 스투파 바로 옆에는 전통 누각 하나가 당당하게 중량감을 뽐내며 서 있었는데, 바로 ‘제해정(祭海亭)’이었다. 정자 정면 중앙에 걸린 푸른색 현판에는 한자로 '祭海亭(제해정)'이라는 이름이 아주 선명하고 기품 있게 새겨져 있었다. 이름 그대로 '호수에 제사를 지내는 정자'라는 뜻이다.칭하이 호수를 바다처럼 신성시하여 호수의 신에게 안녕을 빌던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한 이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공간의 구조적 대조였다. 이국적인 티베트 불교 양식의 스투파 및 오색 타르초와 는 대조적으로, 제해정은 완벽한 한족 스타일의 중국 전통 건축 양식을 취하고 있었다. 특히 정자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에는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 정교하고 화려한 용 조각이 힘차게 감겨 있었다. 티베트족의 성스러운 불탑과 한족 전통의 정자가 한자리에 공존하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오랜 세월 동안 한족과 티베트족의 문화와 역사가 이 흑마하라는 경계의 땅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화합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자, 이 일출 명소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었다.
경건한 감상을 마치고 내려오니, 청해 호숫가 해변에는 국가에서 공식 인증한 ‘국가공원 공식 인증샷 포토존(国家公园官方打卡拍照区, Official Photo Spots in National Park)’이 여행자들의 취향에 맞게 다양하고 아기자기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5.눈이 시리도록 푸른 호수, 그리고 하늘의 야속한 시련
마침내 발을 디딘 청해호 호숫가. 잔잔하고 부드러운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백사장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도가 시작된 호수의 물빛은 정말이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또 맑았다. 만약 이곳이 짠물이 나오는 염호가 아니라면, 당장 바가지로 떠서 생수로 마셔도 될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했다. 왜 이 거대한 물의 요새 이름이 푸를 청(靑)에 바다 해(海)를 써서 '청해호'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백번, 아니 천번 이해하고도 남을 정도로 감동적인 빛깔이었다.
그러나 호수는 이토록 투명하고 아름다운데, 나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오늘도 인생 인증샷을 남기는 데 완벽하게 실패하고 말았다.흑마하 경구를 돌아보는 그 긴 시간 내내, 야속하게도 하늘에서는 거친 비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쳤다. 하늘은 마치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오만상을 찌푸린 채 짙은 먹구름으로 온 세상을 삼켜버렸다.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풍경—하얀 구름과 푸른 호수가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고, 저 멀리 웅장하게 솟은 만년설봉이 푸른 호수와 신비로운 랑데뷰를 이루는 그 꿈 같은 풍경은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 하늘은 간절했던 나를 비웃듯 또 한 번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오! 하늘이시여! 어찌하여 나에게 어제 차카염호에서도 그렇게 모진 광풍을 주시더니, 오늘 흑마하에서까지 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시나이까!’가슴 속으로 몇 번이고 야속한 하늘을 원망하고 또 되뇌며, 결국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다시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아쉬움과 눈물겨운 고생을 가득 안은 채 흑마하 경구를 빠져나왔다. 비록 완벽한 사진은 건지지 못했을지라도, 비바람 속에 몰아치던 청해호의 날 것 그대로의 장엄함은 내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시(詩)가 되어 평생 남을 것이다.




























2026년 5월 15일
폭우가 삼켜버린 청해호의 마지막 풍경
청해호 흑마하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가늘게 시작된 빗줄기는 어느새 온몸을 흠뻑 적실 만큼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택시를 탈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쉽게 다시 올 수 없는 흑마하진 을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고 싶어 우산을 쓴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비에 젖어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거리에는 오히려 비 오는 날만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청해호서해호텔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예상치 못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호텔 뒤편 언덕에서 수십 마리의 야크 떼가 내려와 청해호 1호고속공로를 가로질러 흑마하 초원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토바이를 탄 목동은 양치기 개들과 함께 야크들의 이동을 능숙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양방향에서 모두 멈춰 서서 야크 떼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이곳이 사람이 자연을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티베트 고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도로를 건넌 야크와 양 떼는 드넓은 흑마하 초원으로 흩어져 청해호를 바라보며 한가롭게 풀을 뜯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초원 위를 천천히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연일 이어진 강행군의 피로도 있었지만 창문을 쉼 없이 두드리는 빗소리는 내일 아침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러나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까지도 멈추지 않았고, 청해호를 붉게 물들일 새벽 일출을 보겠다는 나의 작은 꿈은 그렇게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허탈한 마음 때문인지 아침 식사도 입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일정은 청해호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이랑검경구를 둘러본 뒤 황위안의 단거얼고성을 거쳐 시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오전 8시 전날 호텔에 부탁해 두었던 시닝행 병차(합승차)가 호텔 앞으로 도착했다.
작은 승용차에는 이미 세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올라타자 차량은 곧바로 청해호 1호고속공로를 따라 이랑검경구를 향해 출발했다.
흑마하진에서 이랑검경구까지는 약 80km.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혹시 이동하는 동안이라도 비가 그치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오늘도 머피의 법칙은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고 이랑검경구에 도착했을 때는 거센 폭우가 청해호의 풍경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매표소 앞에서 차가 멈추자 잠시 망설였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이번 여행의 아쉬움으로 남겨 둘 것인가.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 이랑검경구의 진짜 모습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투어를 포기하기로 했다.
기사에게 "이랑검은 포기하고 바로 시닝으로 가겠습니다. 대신 여기서 기념사진만 10분 정도 찍고 가도 될까요?"라고 묻자 그는 웃으며 "뚜이, 뚜이!(对,对맞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거센 빗속으로 뛰어가 이랑검경구 입구에서 몇 장의 인증사진만 남겼다. 비에 젖은 카메라와 옷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끝내 청해호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청해호 흑마하에서 꿈꾸었던 새벽 일출과, 이랑검경구에서 바라보려 했던 석양은 모두 빗속으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자연이 내게 허락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청해호를 찾는다면 그날은 오늘 이루지 못한 두 가지 풍경을 모두 만날 수 있기를 조용히 기대하며 시닝을 향해 다시 길을 나섰다.
거센 비를 맞으며 찍은 이랑검 경구 표지석에는 칭하이호 국가지질공원 이랑검 공원 (青海湖 國家地質公園 二郎劍 園區,Erlangjian Park of National Geological Park of Qinghai Lake)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칭하이호 이랑검 경구는 {국가 5A급 관광 명소,
국가 명승지,
국가 자연 보호 구역,
국가 자연 유산
青海湖 二郎剑景区,
目家AAAAA级旅游景区,
国家级风景名胜区,
国家级自然保护区,
国家自然遗产,
5A National Tourist Attraction,National Park of China,Nature Reserve of Chine,Nature Heritage of China}이다
칭하이호 국가지질공원 얼랑젠공원은 칭하이호 남동쪽 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40.52km²입니다. 칭하이호 북쪽에 위치한 얼랑젠 사주는 칭하이 남산의 종시우룽산에 의해 제어되는 북동 방향으로 뻗은 깃털 모양의 이차 단층 구조입니다.
호수 퇴적 작용을 통해 전형적인 사구 지형을 이루었으며, 얼랑젠이라는 이름은 사구 꼭대기가 긴 칼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공원 내 호수 평원(모래 호숫가, 호수 단구, 얼랑젠 및 얼랑디 사주 포함)은 전형적이고 잘 보존되어 있어 칭하이호의 신생대 지각 체계와 현대 퇴적물을 연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깨끗한 생태 환경과 뛰어난 지질 교육적 가치를 지닌 얼랑젠 공원은 칭하이호 관광지의 빛나는 보석과도 같습니다.










사진출처:
칭하이호 이랑검 경구(青海湖 二郎劍 景区,Qinghai Lake Erlangjian Scenic Area) 입구 벽에 설치되어 있는 그림




















[비 내리는 단가얼 고성에서 차마고도의 시간을 만나다]
칭하이호 얼랑젠(二郎剑) 경구를 출발한 병차는 청해호 제1호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다오탕허(倒淌河)에 도착한 뒤, G109 국도를 따라 해발 3,399m의 리웨산(日月山) 고개를 넘어 황위안(湟源)으로 향했다.
기사에게 단가얼 고성 앞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공사로 인해 진입이 어렵다며 황위안 시장 앞에서 내려주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는 말과 달리 시장을 지나 고성으로 이어지는 길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울퉁불퉁한 노면 위로 캐리어를 끌고 비를 맞으며 500m 남짓 걸어야 했다. 짐은 점점 무거워졌고, 젖은 옷은 몸에 달라붙었지만 마침내 단가얼 고성의 성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가얼 고성(丹噶尔古城, Dangar Ancient City)은 시닝시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황위안현에 자리한 역사 깊은 고성이다. 평일인데다 비까지 내린 덕분에 개방형으로 조성된 고성은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옛 차마고도의 흔적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입구인 공해문(拱海门) 앞 안내판에는 단가얼 고성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단가얼은 황위안의 옛 이름으로 '두 강이 합류하는 곳에 세워진 성'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고대 차마무역이 이루어지던 당번고도(唐蕃古道)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명나라 시대에 성곽이 축조되었으며, 당나라 개원 연간에는 차와 말을 교환하던 시장으로 번성하였다. 이후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서부 중국을 대표하는 무역도시이자 가축 유통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오늘날의 단가얼 고성은 공해문과 영춘문을 비롯해 성황묘, 단아당 객사, 인기상행, 하창요 미술관, 황원자수박물관, 진해사영, 공연예술관, 남성벽 등 24개의 역사 건축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해문은 단가얼 고성의 서문으로, 서쪽 청해호를 상징하며 서왕모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세운 웅장한 성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명·청 시대 건축물인 성황묘와 금불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성황묘(城隍庙)는 1776년에 건립된 중국 서북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황묘 가운데 하나로, 남향의 대칭 구조를 갖추고 있다. 병풍벽과 산문, 종루와 고루, 무대, 아치문, 본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으며, 정문인 삼환문(三欢门)은 일곱 개의 계단 위에 세워진 3칸 3문 형식의 건축물이다. 본당인 감심전(鉴心殿)은 성황신을 모시는 중심 전각으로 대전이라고도 불린다.
인기상행(仁记商行)은 로마식 기둥과 돔형 창문을 갖춘 서양식 건물로, 근대 무역의 흔적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당시 사용되던 화폐와 상업 활동,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어 차마고도의 번영했던 시절을 엿볼 수 있다.
진해사영(镇海协营)은 단가얼의 군영으로, 청나라 시기 이 지역을 통치했던 장군들의 업적과 군사 관련 자료들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영춘문(迎春门)은 고성의 동문으로 춘분이 되면 현령이 봄맞이 소몰이 의식을 거행했던 데서 이름이 유래했으며, 공해문과 함께 단가얼 고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성문이다.
단가얼 거리에는 기념품점과 상점들이 이어져 있었고, 청해 지역 특산품과 티베트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계속 내리는 탓에 관광객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덕분에 수백 년의 시간을 간직한 고성의 고즈넉한 정취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고성 탐방을 마친 뒤 택시를 타고 황위안 버스터미널(湟源 公交枢纽中心,Huangyuan Public Transport Hub Center)로 이동했다. 마침 시닝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황위안과 시닝역을 연결하는 701번과 702번은 좌석제로 운행되는 광역버스로 702번를 타고 오후 14시30분 시닝점 1호점대에 도착했다.요금은 12위안이었다(2026년 5월 15일기준).
버스는 고속도로를 따라 약 1시간 만에 시닝역에 도착했고, 그렇게 나의 칭하이 마지막 여정도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예약한 시닝 화수주점 시닝 화차점점 (华宿酒店 西宁 火车站店,Huasu Hotel Xining Railway Station:Huasheng, E.Area,Small Commodities Wholesale Market,No.144 Huzhu W. Rd, Qingdung District, Xining, Qinghai, China)은 시닝역 바로 엎에 위치하고 있어 시닝 시내,외 여행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할것이다.
오후15시 시닝 화숙주점 시닝화차점점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여장을 푼다.




























시닝시(西宁市,Xining City)는
중국 칭하이성의 성도로 면적 7,472km", 인구는 190만 명으로 칭하이 성 전체 인구 522만명 중 40%를 차지하며 한족,후이족,티베트족,몽골족 등이 산다.
시닝은 티베트고원의 동쪽 가장자리이자 황수이의 상류에 위치하며 칭하이 성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해발 고도는 2,200m이다.
이곳은 티베트에 가깝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이 많다.
중국의 후이족은 매우 세속화되어 중국인과 다를 바 없지만 히잡을 쓴 여성이나 무슬림용 모자를 쓰고 다니는 남성도 의외로 많이 보인다.
시내 중심에 1380년에 세워진 후 근래에 중건된 동관 모스크가 있고 티베트 불교 겔룩파 6대 사원인 타얼사(塔爾寺)가 황중현에 있다.

[시닝 동관청진대사, 중국과 이슬람 문화가 만나는 곳]
시닝 화수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오후 3시.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었다. 며칠 동안 이어진 강행군으로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여행자의 호기심은 피곤함보다 강했다.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동관청진대사(东关清真大寺)를 찾아 나섰다.
호텔 바로 앞 소상품시장 (小商品市场, Xiaoshangpin Shichang) 버스정류장에서 33번 시내버스를 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동관청진대사 앞에 도착했다. 사원 앞은 관광객과 예배를 마치고 나온 신도들, 그리고 회족 상인들까지 뒤섞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동관청진대사(东关清真大寺, Dongguan Great Mosque / 青海省西宁市城东区东关大街31号)는 칭하이성 최대의 모스크이자 중국 서북지역을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이다. 실크로드와 당번고도 (唐蕃古道)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시닝에서 오랫동안 회족(回族) 무슬림들의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1380년 명나라 홍무제 때 창건된 이 사원은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전란과 화재, 여러 차례의 재건을 거쳤으며, 특히 1914년 이후 대규모 중건을 통해 오늘날의 웅장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동관청진대사는 중국 전통 건축과 이슬람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웅장한 정문과 넓은 중앙정원, 중국식 처마와 전각, 아라비아 문자로 장식된 예배당, 그리고 예배 시간을알리던 선례루(宣礼楼, Minaret)가 대표적인 볼거리다. 또한 회족 상권인 동관대가 (东关大街)와 이어져 있어 할랄 음식과 회족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중국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정문 누각 앞에 서는 순간, 압도적인 규모와 아름다움에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정문 위로 우뚝 솟은 선례루였다. 멀리서 보면 시계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 무아진이 하루 다섯 차례 아잔(Adhan)을 외쳐 예배 시간을 알리던 미나레트 이다.
선례루 양옆에는 우산 모양의 작은 첨탑이 대칭으로 세워져 있었고, 첨탑 꼭대기에는 황금빛 초승달 장식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초승달은 이슬람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양으로, 동관청진대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 요소이다.
웅장한 정문과 선례루, 그리고 좌우의 작은 첨탑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선례루 앞 벤치에는 붉은 꽃들이 정성스럽게 놓여 있었는데, 회색빛 건물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중앙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마음은 여전히 선례루에 머물러 있었다.
몇 걸음 걷다가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모스크를 향해 가면서도 선례루의 매력에 이끌려 길을 잃은 미아가 된 듯했다.
중앙정원 끝에는 중국식 처마와 전각으로 지어진 대모스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외벽과 내부에는 아름다운 아라비아 문자 장식이 새겨져 있었으며, 예배당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온 여행작가이며 여행서를 집필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설명한 뒤 사진 촬영 허가를 부탁했다. 다행히 흔쾌히 허락을 받아 내부 모습을 몇 장 담을 수 있었다. 여행자로서 얻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중국 전통 목조건축의 우아한 처마와 기하학적인 예배당, 그리고 하늘 높이 솟은 선례루가 하나의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과 이슬람 문화가 수백 년 동안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탄생한 건축미는 내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에 충분했다.
사원 안내판에는 오문(午门)과 미나레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대모스크의 오문은 쌍오문 또는 대문과 소문으로도 불리며 정문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양쪽에는 3층 육각형 구조의 미나레트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으며, 육각 누각과 녹색 유약 기와, 금박 장식이 어우러져 장엄한 모습을 이룬다. 특히 정문의 미나레트와 오문의 미나레트가 대칭을 이루는 배치는 중국 모스크 건축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동관청진대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회족 공동체의 신앙을 지켜온 살아 있는 종교 공간이자, 중국 전통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가장 아름답게 융합된 건축 유산이었다. 시닝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동관청진대사 앞 정류장에서는 1·2·10·14·17·22·23·25·26·33·62·81·83·101·102·103·502·1001·1002번 등 많은 시내버스가 정차해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의 6대 사원은 간덴사, 드레풍사,세라사(라싸), 타쉬룬포사(시가체),타얼사 (칭하이성,시닝),라브랑사 (샤허현,夏河县)인데 라브렁사가 위치한 간난 티베트족 자치주는 쓰촨성 북부의 아바 자치주 등 칭하이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암도(Amdo)티베트 문화권에 속해 있다.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 (Gelug, 黄帽派)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계율 준수와 불교 학문을 강조한다.14세기 말 총카파(Tsongkhapa)가 당시 타락했던 티베트 불교를 개혁하기 위해 창시했으며 겔룩이라는 이름 자체가 티베트어로 선규파(善規派) 즉 바른 규칙을 따르는 종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의 6대 사원 중 한 곳인 칭하이성 시닝시 황중현에 위치한 타얼사를 보기 위해 시닝을 출발한다.시닝에서 30km 떨어져 있다.
시닝(西宁)의 버스터미널은 3곳이 있다.가장 크고 대표적인 곳은 시닝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한 시닝 여객센터 터미널 (西宁汽车客运中心站,Xining Bus Passenger Transport Center Station)이고 라싸, 거얼무등 장거리 노선과 공항버스 등이 운행된다.
신닝루 버스터미널(新宁路 客运站,Xinning Road Bus Station)은 주로 타얼사나 청해호를 운행하고 난촨시루 버스터미널은(南川西路客运 站,Nanchuan West Road Bus Station)은 황난 자치주 등 주로 시닝 남쪽 지역을 운행한다.
정보에 의하면 타얼사를 가려면 신닝루 버스터미널에서 타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호텔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시닝역 버스 환승 센터(西宁火车站 公交 枢纽站,Xining Railway Station Public Transport Hub)에서 909번 버스를 탔다.
요금은 4위안이었다.
마이거우 고개(蚂蚁沟坡, 마이거우포) 또는 개미골 고개입니다.
이 도로는 과거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시닝과 황중현을 연결하던 대표적인 옛길(老路) 구간으로, 현재 버스가 다니는 일반 도로의 이름은 국도 211호선(G211) 또는 옛 지명인 남천동로(南川东路) 연장선입니다.
도로 경로909번 버스는 시닝 시내 중심부 및 남쪽 외곽을 거쳐 산길을 타고 황중현 중심지(루샤얼진)까지 진입하는 독특한 산간 도로 경로를 따릅니다. 주요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닝역 버스 환승 센터를
출발한 909번 버스는 남쪽 방향인 남천공원(南川公园)과 열사릉원(烈士陵园)을 거쳐 시 중심을 벗어나 총자이(总寨, 총채)지역과 칭허마을(清河村) 일대의 평탄한 농촌 도로를 따라 남하했다.
산세가 험해지기 시작하면서 마이거우 저수지(蚂蚁沟水库) 인근에서부터 본격적인 급경사와 구불구불한 회전 구간(盤山公路)이 나타나며 마이거우 고개 정상에 이른다. 고개를 내려오자 황중 버스회사 (湟中公交公司)와 문화광장 (文化广场)을 지나 드디어 타얼사 광장(塔尔寺广场)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종점인 타얼사 상십자 정류장 (塔尔寺 上十字站)에서 내렸는데, 정작 타얼사로 가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눈앞에 나타난 삼거리 길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는 뒤를 무작정 따랐다.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타얼시, 타얼시(塔尔寺)"라고 묻자, 다들 직진하라고 손짓을 한다. 이정표도 없고 가도가도 타얼사는 보이지 않아 결국 지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런데 웬걸, 택시를 탄 지 딱 1분만에 타얼사 매표소 앞에 도착한다. 불과 300m 남짓한 거리였던 것이다. 택시비 8위안을 지불하고 나니 어찌나 아깝고 입맛이 씁쓸하던지. 쩌어업!
나중에 알고 보니 버스 종점인 타얼사 상십자 정류장에서 타얼사 입구(팔보여의탑 광장) 까지의 거리는 약 1km로,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유독 멀고 힘들게 느껴진 이유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직후부터 사찰 입구까지 도로 전체가 오르막 고갯길인 데다가, 타얼사의 해발 고도가 약 2,700m에 달해 조금만 경사를 걸어 올라가도 평소보다 숨이 쉽게 차고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던 것이다.더구나 타얼사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양옆으로 수많은 기념품점과 상점가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실제 거리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더 멀게 느껴진 탓도 있었다.



타얼사(塔尔寺,Ta'er Monastery)는 칭하이성 시닝시 황중구 루샤진(西宁市 湟中区 鲁沙尔镇 金塔路 56号)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 중심에서 25km 떨어져 있다.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6대 사찰 중 하나이자 겔룩파 창시자인 총카파의 탄생지이다.
산비탈에 자리 잡은 타얼사는 1379년 총카파를 기리는 탑으로 시작하여 여러 차례 확장되어 "쿰붐 사원"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고 미륵불전은 1560년에 건립되었다.
타얼사는 2012년 국가 5A급 풍경구로 지정되어 청해호와 더불어 청해성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1. 연꽃을 닮은 성지, 타얼사와의 강렬한 첫 만남
칭하이성 시닝시 중심에서 약 25km를 달려 도착한 타얼사 (쿰붐 사원).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6대 사찰이자 창시자 총카파의 탄생지인 이곳은 산비탈을 따라 궁궐식 건물과 평지붕 건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45만 제곱미터 규모의 거대한 성지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여덟 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을, 구불구불한 계곡은 법륜의 바퀴살을 닮아 시작부터 신비로운 기운을 풍겼다.
매표소에서 여권을 제시하자 안에 계시던 스님께서 "멀리 한국에서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라며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다. 그 다정한 온기를 품고 산문에 들어서자 타얼사의 상징인 여래팔탑(팔보여의탑)이 장엄하게 맞이해 주었다.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 중 중요한 8가지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776년에 세워진 순백색 스투파 주변으로는 수많은 이들이 탑돌이를 하며 공덕을 쌓고 있었다. 기단부에 새겨진 불교 수호신들의 정교한 부조와 길게 늘어선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겨우 타이밍을 잡아 인증샷을 남긴 후, 본격적인 사원 탐방을 시작했다.
2. 장엄한 불교 의식에 매료되다
호법전과 기수전 어디선가 심장을 울리는 웅장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닿은 곳은 1692년에 건립된 호법전(小金瓦殿). 입구에는 '승리의 깃발'을 뜻하는 타르초 젠상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법당 안에서는 스님들이 북, 징, 나발을 연주하며 경전을 암송하는 티베트 불교의 정식 의례 음악 괴(Chö)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타얼사 3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벽화 속 수호신들과 본당의 조각상들이 음악과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사찰과 온 세상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장엄한 호법 의례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서둘러 발길을 옮긴 곳은 1717년 제7대 달라이 라마의 장수를 기원하며 세워진 기수전(祈寿殿)이었다. 봉헌식 때 꽃을 뿌린 자리에서 백단향 나무가 자라나 한여름이면 사방을 향기로 채운다는 이야기 덕분에 '꽃의 사원 쿰붐'이라는 아름다운 별칭을 얻은 곳이다. 유약을 바른 기와지붕 대문과 솟아오른 처마가 돋보이는 정교한 궁궐풍 건물로, 내부의 세밀한 목조각과 청사자를 탄 미륵보살 등 정교한 불상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3. 사원의 중심이자 백미, 웅장한 대경당을 마주하다
호법전과 기수전의 깊은 여운을 안고 나오니, 저 멀리 타얼사의 진정한 메인 법당이자 중심 건축물인 대경당(大经堂)이 시선을 단숨에 압도했다 [자체 배경지식]. 전각으로 들어서기 전, 붉은색 기둥들이 자아내는 큰 문틀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었다. 문틀을 액자 프레임 삼아 그 너머로 길게 뻗은 마당과 아래층의 붉은 벽(벽마황), 그리고 지붕 위의 황금빛 평지붕 장식이 어우러진 대경당의 전경을 사진 속에 담았는데, 단언컨대 이번 여행 최고의 인생샷 구도였다.
이곳은 수많은 승려들이 모여 함께 경전을 암송하고 수행하는 거대한 학문과 신앙의 중심지이다 [자체 배경지식]. 법당 내부를 가득 채운 화려한 탕카와 기둥 장식,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승려의 발길이 스치며 반질반질해진 바닥을 보니 사원의 깊은 역사와 경건한 종교적 에너지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어서 1832년에 설립된 인경원(印经院)으로 향했다. 총카파의 전집과 삼장경, 대학 교재, 부적 목판화 등이 소장된 이곳은 거대한 지혜의 보고였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불법을 전하기 위해 목판을 깎았을 스님들의 숭고한 흔적이 공간 가득 배어 있는 듯했다.이어 서쪽 산 중턱에 위치한 격조 높은 행궁, 길상신궁(吉祥新宫)으로 올라갔다. 5세 달라이 라마와 9세 반첸 라마 등 역대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들이 머물던 곳이자 사원 최고 행정 책임자의 집무처였던 이곳은 전형적인 삼진원락 구조의 티베트식 건축물이었다. 산중턱 높은 곳에 자리한 덕분에 궁 앞마당에 서니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타얼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연 타얼사 최고의 뷰포인트였다.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찾아간 곳은 4대 대학원 중 하나인 시륜경원(时轮经院, 1817년 창건)이었다. 승려들이 시륜금강 수행과 천문학을 연구하는 이곳의 2층 회랑에 서니, 붉은 벽과 황금빛 지붕 위로 내리쬐는 고원의 일몰 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항유화관(酥油花馆, 1988년 건립)에서는 티베트 예술의 최고 정수로 손꼽히는 정교한 버터 조각(수유화) 작품들을 감상했다. 야크 버터로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화려한 작품들이 지장보살상, 벽화와 어우러져 눈을 떼기 힘들었다.
4. 장경루 앞의 달콤한 휴식
그리고 산 위 전각들다시 발걸음이 멈춘 곳은 화려함의 극치인 장경루(藏经楼文殊菩萨殿)였다. 황금 지붕과 청동 거울 상감으로 장식된 5층짜리 목조 건물로, 본당에는 무려 11m 높이의 금박 청동 문수보살상과 3m 높이의 팔대보살상, 그리고 그 주위를 에워싼 1,000개의 작은 문수보살상이 금빛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한참 동안 장경루의 위엄에 취해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허기가 몰려왔다. 장경루 바로 앞 쉼터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해 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고원의 맑은 바람을 맞으며 사원의 풍경을 반찬 삼아 즐긴 그 짧은 휴식은 이번 여행 중 가장 평화롭고 달콤한 순간이었다. 에너지를 충전한 뒤, 사원 위쪽에 자리한 전각들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대금와전에서 남서쪽으로 500m 떨어진 호젓한 곳에는 밀교의 교리와 의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핵심 대학원인 밀종경원(密宗经院)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 자비의 화신인 녹색타라와 천 개의 백타라상이 모셔진 도모전(度母殿, 2003년 건축), 밀교 수호신들의 세계를 입체적이고 정교하게 재현한 만다라가 가득한 금강성운전(金刚坛城殿, 2009년 건축)이 이어졌다. 중생에게 장수와 큰 복을 준다는 도모전에서 조용히 손을 모으며 산 위 전각들의 관람을 모두 마쳤다.
5. 연꽃 사원을 나서며: 고단함마저 복이 되기를모든 관람을 마치고 하산 길에 접어들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파도처럼 몰려왔다. 워낙 거대하고 경사진 사원을 샅샅이 둘러본 탓에 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엄청나게 힘들었다. 타얼사 산문을 빠져나와 909번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내려가는 약 1km의 길은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고행길이었다.비록 몸은 비명을 지를 만큼 지쳤지만, 버스에 올라타 창밖으로 멀어지는 타얼사의 황금빛 지붕들을 바라보니 묘한 성취감과 평온함이 밀려왔다. 머나먼 한국에서 온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던 매표소 스님의 말씀처럼, 이 고단했던 발걸음 또한 내 삶의 작은 공덕과 복으로 쌓였기를 바라며 깊은 울림을 남긴 타얼사 여정을 마무리했다.












































타얼사 투어를 마무리하고
타얼사 상십자 정류장(塔尔寺 上十字站)에서 올 때 탔던 909번 버스를 타고 시닝역 버스 환승 센터(西宁火车站 公交 枢纽站 ,Xining Railway Station Bus Hub)로 돌아오니 오후 15시인데 해가 중천이다.
칭하이성 박물관을 가기로 결정한 후 103로 공교차를 타고 신닝광장북(新宁广场北)에서 내려 10분정도 걸어가니 웅장한 칭하이성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칭하이성 박물관(青海省 博物馆,Qinghai Provincial Museum:No. 58 Xiguan Street, Chengxi District, Xining City,Chinghai)은
칭하이성 유일의 성급 종합 박물관이자 국가 1급 박물관 으로 국가 4A급 경구로 지정되어 있다.
박물관 소장품은 주로 도자기, 자기, 목기, 비단 돗자리, 서예와 회화, 금은 제품, 동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채색 도자기는 다양한 형태와 유려한 문양으로 유명하다.
현재 박물관은 "1+3 테마 전시를 하고 있는데 칭하이 역사 유물 전시를 중심으로 칭하이 무형문화유산 명작 전시,칭하이 고고학적 성과 전시,과거 칭하이 혁명 유물 등 3가지 전시를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들은 칭하이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고, 다양한 차원에서 지역 문화적 특성을 제시하며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칭하이의 발전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시닝 신서녕광장 청해성 박물관 바로 옆에는 칭하이성 문화관,미술관,도서관 등이 밀집되어 있다.








































2026년5월17일 오전7시30분 청해장족문화 박물원(青海 藏文化博物院,Qinghai Tibetan Culture Museum:36 Jinger Rd, Chengbei District, Xining, Qinghai)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오늘 이 여정이
티베트 횡단 여행 제1부 {에 베레스트에서 카일라스까지}와
티베트 횡단 여행 제2부 {칭하이,티베트에서 돌아오는 길}의 마지막 길이다
시닝화수호텔에서 시닝역까지 도보로 10분 거리라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어 간다.
시닝역 버스 환승 센터 (西宁火车站 公交 枢纽站, Xining Railway Station Public Transport Hub)에서 25로 버스를 타고 신시닝광장 (新宁广场)에서 1로 버스로 환승하니 박물원 앞 사거리에 있는 신러후아위안(新乐花园) 정류장에 나를 내려준다.
정류장에서 내린 뒤 사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청해장족문화 박물원(중국장의약문화박물관)건물이 보여 걸으니 5분 후에 도착한다. 시닝역에서1시간30분 정도 걸렸고 요금은 1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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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치유의 세계를 걷다 , 청해장족문화박물원 북관 탐방기
칭하이-티베트 문명의 깊이를 마주하는 첫걸음
청해장족문화박물원(青海藏文化博物院) 표지판 안내서에 따르면, 이곳은 칭하이-티베트 문명사, 정교한 문화재, 민속 예술, 건축, 의학사, 고서적 및 문서, 천문 및 달력, 서예 등 무려 14개의 테마 전시관을 갖춘 거대한 문화의 보고다. 박물원은 2만 점이 넘는 고대 티베트 의학 서적과 탕카, 그리고 1만 2천 점이 넘는 의복과 민속 공예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방대한 소장품들을 환경 재현, 탕카 조각, 유물 전시, 첨단 시뮬레이션 기법을 통해 티베트 민족의 찬란한 문화와 의학의 심오한 의미로 생생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
2012년 국가 4A급 여행경구로 지정된 이곳은 국가 1급 박물관이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티베트 의학과 문화를 종합적으로 수집·보호·전시하는 대형 전문 박물관이다. 2006년 개관 당시에는 '청해장의약문화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의학과 약학 (장의약)을 전문으로 다루던 공간(현재의 북관)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며 역사, 예술, 복식 등 종합적인 '티베트 문화' 전체를 다루기 위해 남관을 신축했고, 2020년 공식 명칭도 지금의 '청해장족문화박물원'으로 변경하면서 비로소 현재의 '1원 2관'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 중 북관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성격이 강해 고대 티베트인들이 행했던 외과 수술 도구 등 독특하고 신비로운 의학 역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반면, 남관은 대중적이고 시각적인 즐거움이 가득하다. 남관의 핵심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618m 길이의 '중국장족문화예술채회대관(탕카)'이며, 화려한 복식과 실크로드 유물들이 가득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현재 북관 입장료는 무료지만, 남관은 60위안의 관람료를 받고 있다. (2026년 5월 17일 기준)
우주와 치유의 세계 ,
약사불 만다라 앞에 서다
북관 1층 서청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포토존이자 최고의 명소인 대형 약사여래 만다라 벽화를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보면 벽면 전체를 집어삼킬 듯 꽉 채우고 있어 카메라 프레임에 다 담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다. 온 벽면에 펼쳐진 이 대형 만다라 벽화 앞에서 발걸음이 단단히 붙잡혔다. 사진 속 사람의 크기와 비교해 보면 그 규모가 얼마나 웅장한지 실감이 난다. 이 거대한 그림은 티베트 의학 경전《사부의전》에 기록된 '약사여래의 정토'를 형상화한 만다라라고 한다.
대각선으로 쏟아지는 조명 아래, 에메랄드빛과 붉은 광물 안료로 촘촘히 짜인 고대의 신비로운 기하학적 문양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빛나고 있었다. 만다라 중앙에서 푸른 빛을 발하는 부처님이 바로 중생의 아픔과 병을 치료해 준다는 약사여래불(약사불)이다. 좌우를 호위하듯 감싸 안은 화려한 금빛 벽면 부조는 우주의 질서와 치유의 힘을 시각적으로 뿜어내는 듯했다. 거대한 치유의 우주 앞에 한 인간으로 서 있는 순간, 경외감을 넘어 마음이 차분히 정화되는 묘한 전율이 흘렀다.
탕카와 의료기구 전시관 , 시각화된 의학 교육의 정수
이어서 발걸음을 옮긴 곳은 2전시실 탕카 및 의료기구 전시관(曼唐器械展厅)이다.
전시실 초입 서론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만탕(Mantang)은 중국에서 독특한 형태의 의학 교육 방식이자 티베트 의학에서 중요한 교육 도구입니다. '만(Man)'은 의학을, '랑(Lang)'은 티베트 불교 전통 회화인 탕카(Thangka)를 의미합니다. 만탕은 본질적으로 그림 위에 의학 지식을 담은 도표입니다. 만탕은 80점의 다채로운 탕카에 4,900개가 넘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티베트 회화 예술과 의학적 요소를 결합하고, 《사부의전》의 전체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특별한 의학 교육 방식은 중국 의학 유산의 보물이며, 중국은 물론 세계 의학사에서도 비할 데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의학 탕카 시리즈의 상징적인 첫 번째 작품인 의왕성 만다라 (Medicine King City Mandala)가 나타났다. 티베트 의학의 최고 경전인 《사부의전》의 프롤로그 내용을 시각화한 핵심 교육용 도구다. 탕카 한가운데에는 티베트 의학의 기원이자 치유의 상징인 파란색 몸의 약사여래가 자리 잡고 있고, 약사불이 머무는 신성한 궁전인 의왕성(약사불의 낙원)이 사각형의 만다라 구조로 대칭 배치되어 있다.
궁전 외부의 사방은 각각 다른 약재가 자라는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첫 번째 탕카는 "우주와 자연의 모든 물질이 곧 질병을 고치는 약이 될 수 있다"는 티베트 의학 고유의 자연 치유 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문화재라고 한다.
의왕성 만다라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인체의 신비를 다룬 배아 발달 과정 및 인체 해부 구조 관련 만탕들이 등장한다. 《사부의전》 제2부인 '논설의전'의 내용을 시각화한 것으로,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도 매우 놀라운 정확성을 보여준다. 배아 발달 과정 탕카는 인간이 자궁 안에서 주차별로 어떻게 성장하는지 38단계의 그림으로 보여주며, 인체 해부 및 골격 구조 탕카는 인체의 뼈, 관절, 주요 장기의 위치를 정밀하게 그려놓아 그저 놀랍기만 하다. 만탕은 세계 의학사에서 보기 드문, 시각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의학 교육 차트였다. 그 구성과 질감, 예술적 디자인, 그리고 색채 선택은 티베트 문화의 생동감 넘치고 독특한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이곳에는 총 156장으로 이루어진 4권의 의학서인 《사부의전》도 전시되어 있다. 티베트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톡 욘텐 곤포'가 773년부터 783년 사이에 편찬한 책으로, 체계적인 티베트 의학의 기초가 되는 경전이다. 여기에 전시된 것은 티베트 의학서 중 가장 큰 사본으로, 길이 2m, 너비 1.2m, 무게 1.5톤에 총 490페이지에 달한다고 하여 그 압도적인 규모에 다시 한번 놀랐다.
천문역산 전시실 ,시간의 수레바퀴와 입체 만다라
천문역산 전시실(天文历算 展厅)은 티베트 고유의 천문 관측 방식, 달력 제작(역법), 그리고 의학과 수학이 불교적 우주관과 어떻게 결합하여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전시실 초입에 전시되어 있는 보제탑(菩提塔)은 깨달음의 상징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탑이자 티베트 불교의 8대 불탑 중 가장 대표적인 탑이다. 탑의 하단 기단부부터 상단의 해와 달 모양 장식까지 이어지는 수직 구조는 티베트 전통 천문학에서 바라보는 우주와 세계의 계층적 구조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탑은 순금으로 제작되었으며 터키석, 청금석, 산호와 같은 다양한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드레풍 사원 소장의 은제 도금 수미산 만달라(만차) 역시 시선을 빼앗는다. 드레풍 사원의 고승들이 불보살에게 우주 전체를 정화하여 바치는 공양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던 종교적 의례용 법구라고 한다. 정교한 은제 도금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영험함 때문인지 만달라 앞에 관람객들이 바친 지폐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어 티베트 밀교의 대표적인 본존불인 시륜금강(時輪金剛) 탕카 앞에 섰다. 시륜금강은 산스크리트어로 '칼라차크라 (Kālachakra)'라고 하며, 바로 '시간(Kāla)의 수레바퀴 (Chakra)' 라는 뜻이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 주기, 그리고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변화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최고의 깨달음을 상징한다. 화면 속에는 본존(남신)이 지혜를 상징하는 배우자(여신)와 몸을 포개고 포옹하고 있는 '남녀불이 (男女不二, 야브윰)'의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수많은 팔과 다리, 무기를 들고 분노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번뇌와 어리석음을 물리치는 강력한 깨달음의 힘을 나타낸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시륜금강 입체 단성(3D 만다라)이 자리하고 있다. 시륜금강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내면의 궁전과 우주를 2차원 평면 탕카가 아닌, 색모래와 건축적 구조를 활용해 3차원 입체 형태로 정교하게 구현해 놓은 것이다. 옆에 걸려 있는 시륜금강 탕카가 성스러운 우주의 설계도라면, 이 조형물은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신들의 세계를 눈앞에 생생하게 세워 올린 완성된 입체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인간의 신체 주기와 병의 치료, 약재 채취 등이 모두 우주의 기운 및 천체 운행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티베트 의학 관점을 담은 구궁팔괘도 입체 만다라 (시륜천체운행도)가 천문역산 전시실의 핵심 유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장의양생 전시실 , 생명 존중과 장수의 염원
장의양생 전시실(藏医养生 展厅)은 티베트 의학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의 변화를 따르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건강 유지 방법을 집대성하여, 고유의 건강 유지 체계를 구축한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장수를 꿈꾸는 티베트인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6장수도를 볼 수 있었으며, 티베트 의학의 백과사전인 《사부의전》 전문을 578개의 희귀한 석재에 새겨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든 기념비적인 석각 사부의전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에필로그, 그리고 예기치 못한 전율: 618m의 기적
청해장족문화박물원 북관의 마지막 전시실에는 장족들이 고대부터 실제로 사용하던 손때 묻은 의료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에필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묵직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티베트 의학은 예방과 치료를 결합한 건강 유지 접근법으로 생명의 법칙을 탐구하고 집대성한 것이며, 전통 중국 의학에 내재된 생명 존중의 가치 추구를 담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의학 탐험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며 관람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뜻밖의 기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구 바로 옆 전시실에서 중국장족문화예술채회대관 (中国藏族文化艺术彩绘大观)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거대한 충격에 휩싸이며 등줄기를 타고 찌릿한 전율이 흘러내렸다.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와아……" 하는 탄성만 새어 나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마주한 이 탕카는 길이가 무려 618m, 폭이 2.5m에 달하며, 400명 이상의 화가들이 27년에 걸쳐 제작해 세계에서 가장 긴 탕카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도 등재된 인류의 유산이었다.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진 탕카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마치 신화 속 이상향인 '샴발라'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있는 듯한 기묘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 안에는 석가모니의 일생부터 티베트 불교 예술, 역사, 문화, 그리고 의학적인 내용을 포함한 방대한 우주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내부는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 경이로운 현장의 감동을 트래블 로그에 온전히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쫓겨날 각오를 하고 몇 장의 사진을 조심스레 카메라에 담았다. 요동치는 심장과 불안함을 감추며 마침내 검색대를 빠져나왔을 때, 내 안에는 평생 잊지 못할 티베트의 거대한 우주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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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놓칠 뻔한 반쪽의 기적, 청해티벳문화박물원 남관 탐방기
청해티벳문화박물원(青海藏族文化博物院,
Qinghai Tibetan Culture Museum) 북관 탐방을 마쳤을 때만 해도 나의 여정은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 출구로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하려던 찰나, 뜻밖에도 바로 옆에 '청해장족문화박물원 남관'이라 적힌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잠겨 있는 출입구를 지나 화살표를 따라 돌아가니 남관 매표소가 나타났다. 그제서야 이곳이 남관과 북관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마터면 이 거대한 박물원의 반쪽만 보고 발걸음을 돌릴 뻔한, 아찔하고도 다행스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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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의 서언(序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티베트 문화예술 회화의 대관과 실크로드, 칭하이-티베트 고원의 문명과 같은 기획 전시를 하고 있으며, 전시된 유물 하나하나에는 시간의 기억이 흐르고 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간의 기억이 흐르는 남관의 넓은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1. 몸에 입는 역사와 문화: 민족복식장신구전람관
가장 먼저 들어선 민족복식장신구전람관 (民族服饰展览馆, Exhibition Hall Of Garments And Accessories)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티베트의 전통 의복은 대담하고 강렬한 색상 조합을 사용하여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수많은 스타일과 다양한 장식 형태가 돋보였는데, 특히 금색과 은색 실을 사용해 밝으면서도 조화로운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의상을 완성하는 필수 요소인 장신구들 역시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교하게 조각되고 상감 세공된 금·은 칼, 허리 버클, 도금 장신구들을 비롯해 옥, 마노, 터키석을 촘촘히 박아 넣은 귀걸이 등이 빛나고 있었다. 머리와 땋은 머리, 귀, 목, 가슴, 손가락, 허리에 이르기까지 전신을 치장하는 장식들은 화려한 의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복식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전시실에는 선남선녀의 복식뿐만 아니라 장수, 스님 등 다양한 계층의 복식이 지역별,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옷은 비록 말로 표현되지 않지만 광대한 세계를 담고 있었다. 티베트 전통 의상은 본질적으로 '몸에 입는 역사와 문화'였으며, 세대를 거쳐 끊임없이 풍요로워진 각 시대 사람들의 미적 사상과 취향을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다만, 모델들의 얼굴까지 사실적으로 살려 전시했다면 훨씬 생동감이 넘쳤을 텐데, 얼굴이 없는 마네킹으로 처리되어 현장감이 조금 떨어졌던 점은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2.고원의 오랜 숨결:카펫전시관, 건축예술청,서법예술청
이어서 마주한 카펫 전시관 역시 깊은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내구성이 뛰어난 티베트 카펫은 고원 북부의 고급 양모와 천연 염료를 사용해 손으로 직접 짜낸 것으로, 2006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중국 서부의 춥고 높은 고도에 살던 이들이 동식물 섬유로 만든 이 카펫(카다디안)은 중국 수제 카펫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위에 깔린 매트'라는 뜻을 지닌 카다디안의 독특한 형태와 생생한 색상은 티베트 고원의 수천 년 수공예 기술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장족건축예술청(藏族建筑艺术厅,Exhibition Hall Of Tibetan Architectural Art)으로 들어서자 티베트 건축 역사상 최초의 궁궐로 여겨지는 윰불라강 궁전(雍布拉康宫殿, Yumbulagang Palace 西藏自治区山南市 乃东区) 미니어처가 우뚝 서 있었다. 기원전 200년경 투보 왕국의 초대 왕 트리첸 감포 재위 기간에 처음 지어진 이 궁전은 후대 티베트 건축 양식의 견고한 토대가 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이 외에도 라사의 포탈라 궁, 14세기에 지어진 장쯔 종, 그리고 불교 사원인 타얼사의 미니어처까지 티베트의 위대한 건축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동굴과 나무집이라는 원시적 형태에서 시작해 경사면을 활용한 특유의 거주 양식으로 발전한 이 건축물들 속에는 티베트인들의 삶의 방식과 종교 철학, 그리고 험난한 지리적 환경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티베트 서예 전람관 (藏族书法艺术厅,Exhibition Hall Of Tibetan Calligraphy Art Hall)에서는 삼예사Samye Monastery)에 위치한 삼예사 흥불맹서비(Samye Xingfo Trothing monument)가 나를 맞이했다. 8세기 후반 투보 왕조 시대에 건립된 이 석비에는 고대 티베트어로 불교 숭상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어 초기 문자 연구의 핵심 자료로 평가받는다. 7세기 학자 톤미 삼보타가 30개의 자음과 4개의 모음으로 표준화한 티베트 문자는 이후 우첸 서체, 우메드 서체 등 시대와 달라이 라마 재위 기간을 거치며 드루마, 츠직, 큐직 서체 등으로 아름답게 진화했다. 획과 선의 배열을 통해 글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티베트 서예는, 글자 전체의 구성에 영혼과 정신을 담아내는 하나의 장엄한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며 전시관을 나왔다.
3. 문명의 교차로: 실크로드와 칭짱고원문명전청
3층으로 올라가자 실크로드와 칭짱고원문명전청 (丝绸之路与青藏高原文明展厅,Exhibition hall of Silk Road And The Civilisation of Qinghai Tibet-Plateau)이 펼쳐졌다. 지구에서 가장 높고 젊은 고원이자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칭하이-티베트 고원의 기원, 그리고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양의 역사적 교류를 다루는 곳이었다. 고원의 험난한 설산 지형을 재현한 웅장한 구조물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상고시대부터 사조지로 시대, 토번 왕조를 아우르는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단연 '석류꽃 무늬 보석 상감 금도금 은 왕관 장식'장식(鎏金嵌宝石 连珠 石榴花纹银冠饰,Gilt Silver Hat Omament With Lnlaid Gemstones And Beads-string And Pomegranate Flower Pattems)과
4왕 금배(四王金杯,Golden Goblet With Four-king Figures)였다. 정교함과 찬란함이 극에 달한 유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압도적인 감동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당번고도를 통해 실크로드의 영광스러운 발자취가 이 광활한 고원에 고스란히 새겨졌음을, 그리고 그 문명의 깊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멋지게 재해석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4. 대서사시의 절정: 아아, 채회대관청이여!
그리고 마침내 발걸음이 닿은 곳, 채회대관청에서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북관의 감동을 넘어 이 경이로운 색채의 대관을 여기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숨이 멎을 것 같은 황홀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곳에 전시된 중국장족문화예술채회대관 (中国藏族文化艺术彩绘大观,The Great Thangka Painting of Tibetan Culture and Art)은 티베트 설원 고원이 탄생시킨 위대한 두루마리 탕카이다. 국가급 명장 산저라제의 지휘 아래, 27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400여 명의 정상급 화가들이 영혼을 바쳐 협업해 완성한 대작이다. 길이 618m, 폭 2.5m에 달하는 이 엄청난 규모의 그림은 티베트 문화의 모든 것을 담아낸 백과사전이자 기네스 세계 기록에 빛나는 걸작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장엄한 일생은 물론, 티베트의 역사와 종교가 세밀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특히 당나라 문성공주와 금성공주가 티베트의 왕에게 시집오는 역사적인 행렬 장면은 눈이 시릴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티베트의 태동부터 찬란한 역사까지를 붓끝으로 엮어낸 이 기념비적인 탕카는, 단순한 그림을 넘어 거대한 대서사시 그 자체였다.
우연한 이정표 하나 덕분에 마주하게 된 남관의 세계. 화려한 복식과 정교한 건축, 정신을 담은 서예를 지나 618m의 장대한 탕카로 정점을 찍은 이번 탐방은,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을 고원의 색채와 깊은 감동을 아로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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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장족문화박물원에서
청장고원자연박물관 으로 가는 길
중국의 행정구역상 칭하이성은 23개 성(省)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번에 청해장족문화 박물원 의 남관과 북관을 모두 둘러보며 이곳이 깊은 역사와 숨결을 간직한 '티베트 문화권'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실감하게 되었다.
긴장과 감동이 가득했던 남관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여정지인 청장고원자연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다시 북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북관과 청장고원자연박물관은 육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연결되어 있어 동선이 아주 편리했다.
마침 주변을 둘러보니 싱그러운 나무 그늘과 편안한 벤치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벤치에 앉아, 미리 준비해 온 햄버거로 소박하지만 꿀맛 같은 점심 식사를 즐겼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니 오전 내내 걸어 다녀 묵직해졌던 다리의 피로가 기분 좋게 풀려갔다.
어느 정도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니 아직 남은 오후 일정을 소화할 힘이 생겼다. 시간을 확인한 뒤 다시 가방을 고쳐 매고, 푸른 하늘 아래 놓인 육교를 건너 시닝박물관군 경구((西宁博物馆群 景区)를 구성하고 있는 청해장문화박물원, 청해고원자연박물관,쿤룬옥문화박물관(青海藏文化博物院,青藏高原自然博物馆,昆仑玉文化 博物馆)중 한곳인 청장고원자연 박물관을 향해 활기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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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에서 마주한 생명의 역사와 경고: 청장고원자연박물관 탐방기
청장고원자연박물관(青藏高原自然博物馆, Qinghai-Tibet Plateau Natural History Museum)은 시닝 박물관군 경구(西宁博物馆群 景区, Xining Museum Cluster Tourist Attractions)의 두 번째 핵심으로 청해장족문화 박물원과 서로 마주보고 있어 빨려 들어가 듯이 이끌려 간다.
박물관 정면에 들어서자 기둥 사이에 설치된 하얀색 곡선 조형물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칭하이-티베트 고원의 만년설산과 그 위를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을 형상화한 역동적인 건축미였다.
박물관의 캐치 프레이즈인 "산수(山水)를 근원으로 삼고, 모든 것을 품는 신성한 땅"이 건물에 걸려 있는 듯 하다.
입구 표지판 옆 안내판에는 이곳의 정체성을 압축한 문장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산수(山水)를 근원으로 삼고, 모든 것을 품는 신성한 땅"
"고원 자연 박물관은 1만 ㎡의 전시 공간에 24개의 전시실, 10개의 정교한 서식지 전시관, 6천여 종의 귀중한 동식물 표본, 생동감 넘치는 산하천 조형물 그리고 첨단 기술을 통해 칭하이-티베트 고원의 장엄한 풍경, 지질, 귀중한 광물 자원, 동식물, 생태적 특성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24개의 전시실은 칭하이-티베트 고원의 웅장함, 야생성, 풍요로움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칭하이'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건물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자 청장고원(티베트 고원)의 입체적인 지형 지도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평균 고도 4,500m에 달하는 세계의 지붕. 약 5,500만 년 전 인도 판과 유라시아 판의 거대한 충돌로 형성된 이 거대한 고원은 지구의 나이(약 45억 4,000만 년)에 비하면 아이와 같지만, 지구상 모든 생명에 대한 가장 소중하고 험난한 진화의 기억을 품고 있는 땅이다.
지도 옆으로는 고원의 설산을 배경으로 한 실제 크기의 야크 박제품이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여 돌진할 듯한 생동감에 소름이 돋았다. 불과 며칠 전 대자연 속에서 마주쳤던 그 야크들의 거친 숨소리가 박물관 공기 속으로 다시금 전해지는 듯했다.
1. 지구의 보물과 지질학적 신비: 광물과 흑색류금
동선을 따라 이동하자 박물관의 심볼이자 대형 석염(암염) 결정이 압도적인 크기로 나타났다. 약 300만 년 전 해서주 망애 대랑탄 고염호(海西州 茫崖 大浪滩古盐湖)에서 산출된 이 암염은 무게가 무려 1,200kg에 달했다.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낸 표면의 뚜렷한 격자무늬는 규칙적이고도 아름다운 입체감을 뽐냈다.
고원의 지하는 그야말로 지구의 보물, 광물 자원의 보고였다. 신생대 고제3기 팔레오세(Paleocene)부터 시작된 지각 변동은 쿤룬 산맥과 치롄 산맥을 솟구치게 했고, 굳어진 용암과 지각의 융기는 수많은 천연 광물을 잉태했다.
목리영웅(木里英雄)은 숯처럼 검은 표면에 거친 균열과 미세한 기공이 발달한 대형 오석(烏石, Black Stone)이다. 고원의 급격한 기온 변화와 오랜 풍화가 만든 이 돌에는 쓰촨성 무리 장족 자치현(木里藏族自治县)에서 산불을 진압하다 희생된 소방 영웅들을 추모하는 글귀가 금색으로 각석되어 있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쿤룬옥(昆仑玉)과 금광석은 칭하이성 쿤룬산맥 일대의 아름다운 연옥 원석과 함께, 안티모니, 구리,납,코발트 등이 풍부한 칭하이성의 저력을 보여주는 거대한 석영맥형 금광석이 빛나고 있었다.
터키석과 자수정 지오드(紫水晶, Amethyst Geode)는 우란 지역의 기이한 터키석 원석과 화산암 내부의 빈 공간에 지하수가 유입되어 오랜 시간 안쪽으로 벽면 결정을 이뤄낸 신비로운 보랏빛 천연 자수정 동굴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한참 동안 붙잡았다.
이어서 진입한 흑색류금(黑色流金, Black Gold Floating Petroleum) 전시장에서는 인류가 지질학적 수수께끼를 풀어낸 짜릿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삼엽충 화석부터 규화목에 이르기까지 석화 작용의 비밀을 밝혀낸 고생물학자들은 황량한 차이다무 지층에서 유전의 위치를 찾아냈다.
이 칭하이 유전(靑海油田) 구역에서 발견된 쿤베이 유전(昆北油田,Kunbei Oil Field), 망아이 유전(茫崖油田,Mangya),산후 유전 (三湖油田, Sanhu)의 매장량이 수억 톤에 달한다는 대목에서는 자원 빈국 한국에서 온 여행자로서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2. 얼음의 세계와 아시아의 젖줄: 빙설지대와 삼강원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환상적인 빙설지대 (冰雪地帶, Ice & Frozen Region) 전시관으로 이어졌다. 실제 자연 동굴을 모티브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 얼음 종유석과 바닥의 석순 구조 위로 푸른빛과 녹색조의 조명이 스포트라이트 형태로 부딪히며, 고원의 혹독하고도 몽환적인 빙하 생태를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이어 마주한 삼강원 전시실(三江源, The Source of Three Rivers)은 이번 탐방의 문화적·역사적 하이라이트였다. 양쯔강(장강), 황하강, 란창강(메콩강)의 발원지이자 아시아의 젖줄인 삼강원의 웅장한 대자연이 거대한 디오라마를 통해 생생하게 펼쳐졌다.
특히 천년의 근원 탐구(千载问源, A Thousand Years of Searching for the Source) 코너의 부조 벽화들은 인류가 이 험난한 삼강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를 예술적으로 고증하고 있었다.
문성공주 부조는 당나라 문성공주가 토번(티베트)으로 시집가는 행차를 묘사한 부조로 칭장고원을 통한 고대 문명의 역사적 교류와 화합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백의 장진주(將進酒) 부조는 역동적인 파도 문양 위로 시인 이백의 유명한 구절인 *“황하의 물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차게 흘러 바다로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네(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를 새겨놓아 높은 지세에서 발원하는 황하의 기상을 시각화했다.
원대 도실 일행 탐사 부조(考察黃河源 元代都实 等)는1280년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명을 받아 황하의 발원지인 성숙해(星宿海) 일대를 최초로 공식 조사했던 조정 관리 도실(都實) 일행의 험난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산해경(山海經) 고증 부조는 *“민산에서 강수가 흘러나와 동북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岷山, 江水出焉, 東北流注于海...)”*라는 구절과 함께 악어, 거북 등 고대 고원 주변의 풍부했던 수생 생태계를 거친 부조 기법으로 생생히 복원했다.
이와 함께 청나라 건륭제 시대의 역사적 지도 부조와 2008년 현대 과학 조사의 발자취까지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삼강의 근원을 향한 인류의 끊임없는 집념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삼강은 삼강포육(三江哺育, The breeding of Three Rivers) 전시의 설명대로 고원에서 시작되어 아시아 절반에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고 문명을 자라게 한 위대한 모태였다.
3. 위기에 처한 지상낙원의 경고(净土堪忧, Alarming pure land)
그러나 박물관의 마지막 여정에서 마주한 전시는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옛날 옛적 소와 양이 평화롭게 풀을 뜯던 아름답고 풍요로운 청장고원의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인간의 무자비한 개발과 착취로 인해 사나운 모래폭풍이 대지를 집어삼키고 있었고, 맑은 옥수가 흐르던 자리는 검은 흙으로 뒤덮인 황폐한 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 현대 문명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 자부해 왔지만, 결국 인류는 전례 없는 생태적 재앙과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티베트와 칭하이를 직접 여행하며 내 눈으로 똑똑히 목도했던 고원의 변화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아름다운 지상낙원은 파괴된 모습을 통해 나에게 강력하고 서늘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청장고원은 자연이 오랜 세월에 걸쳐 기록한 ‘생명의 책’ 중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가 평생을 바쳐도 대자연의 모든 면을 다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이기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 고원의 모든 생명체와 진정한 친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온전히 확인하고 새로운 종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박물관을 나서는 길, 만년설산을 닮은 하얀 조형물 위로 비치는 하늘을 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이제 인류는 자연이 열어준 파괴의 문 앞에서, 공존이라는 새로운 출구를 찾아 절박한 발걸음을 옮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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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하이·티베트 여정의 마무리: 시닝식물원에서 고원명주 타워까지
시닝박물관군 경구(西宁博物馆群景区)를 구성하고 있는 청해장문화박물원,청해고원자연 박물관,쿤룬옥문화박물관(青海藏文化博物院, 青藏高原自然博物馆, 昆仑玉文化博物馆) 중 쿤룬옥문화박물관은 작년 신장위구르자치구 호탄옥박물관을 탐방했던 경험이 있고, 일정상 시간적인 제한도 있어 아쉽지만 시닝박물관군 경구 투어를 마무리하고 시닝식물원과 시닝 TV타워 투어에 나선다.
청해장문화박물관 버스 정류장에서 72로 공교차(시내버스)를 타고 시닝식물원 (西宁植物园)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500m 정도 언덕길을 오르자 시닝식물원 티켓오피스에 도착한다. 저 멀리 시닝 TV타워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시닝 국립 식물원(西宁国家植物园, Xining National Botanical Garden: No.5 Xishan 3rd Alley, Chengxi District, Xining)은 시닝시 시산(西山)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시닝식물원 으로 불리는 남쪽 정원과 중국과학원 서북고원생물연구소가 있는 북쪽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 정원은 522헥타르 규모로 외지 식물 보존과 원예 전시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곳은 칭하이-티베트 고원 야생동물 구조 및 번식 센터, 양묘장, 라일락 정원, 장미 정원, 침엽수 정원을 포함한 6개의 전문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반면 과학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북쪽 정원은 칭하이-티베트 고원 최대 규모의 생물 표본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시닝식물원의 주제 정원 구역 중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곳은 분재 정원(盆景园)으로, 중국 쑤저우 정원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정교하게 가꿔진 수백 분의 다양한 분재와 아름다운 연못, 정자가 어우러져 식물원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사진 촬영 명소로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라일락 정원(丁香园)의 인기도 분재 정원을 능가한다. 라일락은 시닝시의 공식 시화(市花)로, 내가 찾아간 5월 17일은 라일락꽃이 지고 있었지만 향기로운 내음이 가득했고 수많은 상춘객이 봄의 향연을 즐기고 있었다.
시닝식물원 정원 앞쪽에는 길게 띠를 두르며 심어진 주황색, 노란색, 보라색의 화려한 튤립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프레임이 설치되어 있어, 뒷편의 시닝 TV타워를 배경으로 셔터를 누르면 인생샷을 건질 수도 있다. 튤립 뒤편 잔디밭에는 둥근 수형으로 자리 잡은 붉은빛과 보랏빛의 라일락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튤립과 함께 식물원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대표적인 명소로 손꼽힌다.
라일락 정원 뒷편으로는 가문비나무, 소나무 등 고산지대 및 한랭 기후에 강한 침엽수들이 시닝 TV타워에 닿을 만큼 높게 자라고 있어 이곳이 고산지역임을 다시금 알려주고 있었다.
고원화훼원(高原花卉园, Alpine Flower Garden)에서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 작고 앙증맞지만 너무너무 귀엽고 예쁘게 보였다.
중장약 식물원(中藏药园) 역시 칭짱고원의 독특한 기후 조건에서 자라는 희귀한 티베트 약용 식물과 중화 전통 약초들을 보존·전시하는 특색 있는 정원으로 손색이 없었다.
식물원 투어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겨 마주한 고원명주 타워(高原明珠塔, Xining TV Tower)는 상하이 동방명주탑의 디자인을 모방하여 해발 약 2,395m의 서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자리 잡은 다기능 전망타워 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타워 내부 2층에는 시닝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4층에는 360도 회전하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회전 레스토랑이 있어 시닝 야경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시닝 고원명주 타워가 서산의 정상에 우뚝 서 있어 시닝 시내를 내려다볼 수는 있지만, 고개를 조금만 들어 멀리 바라보면 고원명주 타워보다 훨씬 높게 올려다 보이는 칭하이 티베트 고원의 고봉들이 병풍을 두른 것 같이 파노라마 전경으로 펼쳐진다.
오늘 밤 나는 시닝 고원명주 타워 4층 레스토랑에 앉아 지난 한 달여간에 걸친 티베트와 칭하이를 거닐던 길들을 회상하고 있다.
참으로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내일이면 세계의 지붕 칭하이 티베트 고원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내 머릿속에 강인하게 새겨진 티베트 고원에 대한 기억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티베트의 대서사시로 남을 것이다.
방이 이슥하여 시닝 고원명주 타워를 내려와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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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18일 오전 8시 시닝 시티 투어의 베이스 캠프였던 화수호텔 시닝역점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호텔 앞에 있는 소상품시장 정류장에서 공교차를 타고 시닝 기차역 옆에 위치한 시닝 종합 버스 터미널(西宁汽车客运 中心站, Xining Passenger Transport Terminal)에 도착한다.
오전 9시 시닝 차오자바오 국제공항 (西宁曹家堡国际机场)행 공항버스 티켓을 끊었으나 승차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전광판에 공항버스 탑승 정보가 표시되지 않는다.티켓에 표시된 4번 탑승구에도 공항버스가 보이질 않아 불안해지는데 등뒤에서 지창지창(机场)하며 사람이 다가온다.예예(是啊是啊!)했더니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그를 따라가니 4번 게이트가 아닌 다른 게이트로 데리고 가는데
밴차(중국어: 班车, bānchē)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공항버스를 생각했던 나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시닝 종합 버스 터미널에서 티켓팅을 했으니 믿기로 하고 밴에 탑승하니 승객은 3명이었다.
40여분을 달리자 멀리 시닝 차오자바오 국제공항이 시야에 들어온다.
2026년 5월 18일 11시55분 시닝 차오자바오 국제공항을 이륙한 산동 항공 SC8724편은 450km를 비행한 후 2026년5월18일 오후 13시30분 인촨 헤이둥 국제공항(银川 河东国际 机场)공항에 도착하여 30분간 환승대기를 거쳐 오후 14시 지난야오창국제공항 (濟南遙牆国际机场,Jinan Yaoqiang International Airport TNA)을 향해
재이륙하고 980km를 비행한 후 오후 16시20분
무사히 지난 야오창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지난 야오창국제공항에서 1시간 30분 환승 대기를 거쳐 오후 18시30분 샨둥항공 SC8009편은 지난 야오창국제공항을 이륙하고 650km를 비행한 후 오후 21시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여
티베트 횡단 여행 제1부 {에베레스트에서 카일라스까지}
穿越西藏之旅 第一部 {從 珠穆朗瑪峰 到 岡仁波齊峰}
Journey across Tibet Part 1
{From Everest to Kailash}
티베트 횡단 여행 제2부 {칭하이,티베트에서 돌아오는 길}
穿越西藏之旅 第二部
{青海, 西藏返回的途中}
Journey across Tibet Part 2
{Qinghai, On the way back from Tibet}의 모든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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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티베트 여행을 마무리하며 내가 보고 느낀 감상을 시로 썼다.
Concluding my trip to Tibet, I wrote a poem capturing the impressions I had seen and felt.
西藏之旅即将结束,我写下了一首诗,记录下我所见所感。
천상같은 티베트를 돌아보니 꿈에 샴발라를 본 듯 하구나!
하아얀 설산이 하늘과 맞닿아 경계마저 사라졌구나!
하늘 아래 첫 땅 티베트!
내 마음과 몸이 영원히
티베트로 돌아가기를 꿈이라도 꾸었으면 하노라,
티베트 여행길에서 2026년 5월 10일 최길구 지음
Looking back upon the heavenly Tibet, it feels as if I have seen Shambhala in a dream!
The white snow-capped mountains touch the sky, and even the boundaries have vanished!
Tibet, the first land beneath the heavens!
I wish I could at least dream that my heart and body would return to Tibet forever.
On a journey to Tibet, May 10, 2026 Written by Choi Guilkoo
回望如梦似幻的西藏,仿佛梦中已是香巴拉!
白雪皑皑的群山直插云霄,连国界都已消失!
西藏,天下第一片土地!
我多么希望,我的心和身体能够永远回到西藏. 2026年5月10日西藏之旅
作者:崔吉求
에필로그(结语,Epilogue)
길 끝에서 만난 푸른 하늘, 그리고 다시 시작될 여정
티베트와 칭하이의 거친 바람을 뒤로하고 마침내 익숙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라싸에서 출발해 강디스산맥과 쿤룬산맥을 넘고, 아직 유채꽃이 피지 않아 황량하고도 웅장했던 칭하이성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길고도 아득했던 여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창밖으로 멀어지던 만년설산의 실루엣이 비로소 내 삶에 깊은 문장으로 남았음을 실감한다.
티베트의 성지 라싸에서 시작해 시닝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 ‘돌아오는 길’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대자연 앞에 나를 온전히 내려놓는 ‘비움’의 과정이었다. 타르초가 세차게 흩날리던 고갯마루의 적막함, 화려한 색채 대신 대지의 거친 숨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던 광활한 티베트 고원, 그리고 그 끝에서 시리도록 푸른 눈부심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던 칭하이호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시 돌아온 집에서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고원의 강렬한 태양과 차가운 바람에 조금 그을린 얼굴, 하지만 눈빛만큼은 이전보다 한층 단단하고 깊어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보았던 그 압도적인 푸른색과 고요함은 이제 내 마음 깊은 곳에 평생 바래지 않을 이정표로 남았다.
앞으로 일상의 소음에 흔들릴 때마다, 고원에서 만났던 그 거룩한 바람 소리가 나를 고요히 붙잡아 줄 것이다.
티베트의 심장에서 시작해 칭하이의 대산맥을 거쳐 마침내 내 삶의 자리로 돌아온 이 여정은 이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고원이 선물해 준 삶에 대한 경외심과 단단해진 마음을 품고, 나는 다시 나의 일상을 힘차게 횡단하기 시작할 것이다. 길은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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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횡단 여행 제2부
{칭하이, 티베트에서 돌아오는 길}
穿越西藏之旅 第二部
{青海, 西藏返回的途中}
Journey across Tibet Part 2
{Qinghai, On the way back from Tibet}
트래블 로그를 2026년 7월12일 오후 23시50분 예산명지병원 513호실에서 원고를 탈고하면서 이번 여행을 걱정하고 격려해준 사랑하는 가족과 일가친지,친구들,그리고 독자들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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