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는 기원전3~4세기경에는 삼한중 마한이었으나 350년경에는 백제의 영토였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남진하여 충주를 정벌하고 국원성을 설치하여 북으로 요동과 만주 흑룡강(중국 동북3성) 남으로 국원성을 아우르는 한민족 최대의 대제국을 건설하여 천자국을 칭하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살수대첩과 안시성전투로 막아내고 나라를 지킨 웅대한 기상을 만천하에 과시하였다.수나라는 고구려와의 패전으로 멸망하고 당나라는 나당 연합군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키지만 당나라도 국력 쇠퇴로 결국 멸망하게 된다.
신라는 외세인 당나라를 한반도에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한민족사적 관점으로 보면 고구려의 영토였던 중국 동북3성을 모두 잃게되어 우리의 영토가 한반도로 국한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고 말았다. 550년 신라 진흥왕이 충주에 국원성 소경을 설치하고 757년 경덕왕이 국토의 중앙이라 하여 중원경으로 개칭한다. 940년 고려 태조는 중원경을 충주부로 개칭하였으나 1395년 조선 태조는 충청도를 설치하고 도청을 충주에 두었다.1896년 충청도가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로 분도가 되며 충청북도의 도청소 재지가 되었지만 1908년 도청을 청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어 충주가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도시임을 말해주고 있다.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1370-1)충주 동량대교 앞에 치하고 있습니다.조동리선사유적은 청동기문화층과신석기문화층이 위 아래층에서 발굴되었다.청동기문화층에서는 사각집터 불땐자리 움 신석기문화층에서는 돌무지유구등이 발굴되었고 신석기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와 불땐 자리등이 발굴되었다.조동리의 석기는 돌보습 돌도끼 화살촉이 발견되었고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구멍무늬토기 굽잔토기가 발견되었는데 굽잔토기는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의꽃으로 평가된다.이밖에도 그물추와 흙그물추 쌀 보리 밀 귀리등의 씨앗도 발견되어 농경과 어로생활상을 엿볼수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충주출신 통일벼의 아버지 허문희박사가 통일벼를 개발하여 우리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킨 업적을기리고 있다. 주말이었지만 문화관광 해설사가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유물 관람에 큰 도움이 되었다.Open 시간은 09~18시까지이고 월요일은 휴관하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충주 탄금대 공원은(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안길 31)에 위치하며 우리나라 명승지 제42호로 지정된 공원입니다.탄금대란 1400년전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공원 안에는 한국전 당시 전사한 전몰군경 2,838위를 기리기 위해 1956년에 건립한 충혼탑이 있고 항일시인 권태웅의 감자꽃 노래비도 옆에 서 있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이 곳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순국의 장소이기도하여 충주가 애국충절의 고장임을 일깨워준다.탄금정에 올라서니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이 휘감아 돌고 있어 우륵 선생이 망국의 한을 가야금을 타면서 달래던 모습이 떠올라 애잔하게 느껴진다.정자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신립장군이 열두번을 오르내리며 병사들을 지휘하다가 전사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열두대가 있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탄금대 공원은 송림과 죽숲이 우거져 있어 산책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그 끝 대문산이 품은 태고종 대흥사가 있다. 용흥사라는 절터에 1969년 오범우 스님이 창건하여 대흥사라고 개칭하여 현재에 이른다.대웅전 앞에 4개의 석등 다층석탑과 산신각이 있고 은진미륵상 앞으로는 법고와 범종이 있는데 범종을 타종하니 종소리와 여운이 5분 넘게 이어진다. 탄금대공원 안에는 여러 주제의 조각상들이 설치되어 있어 심심한 틈을 주지 않는다. 개방형 공원으로 입장료는 무료이다. 탄금대는 탄금호유람선(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중앙탑길168-6 www.tangeumhocruise.co.kr)을 타고 돌아볼수도 있다.매일 6회 운항하며 승선요금은 13,000원이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은 국보 제6호로 지정된 14.5m의 7층 석탑으로 2층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올라갈수록 크기가 줄어들어 비례감이 느껴진다. 신라 38대 원성왕 때인 8세기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7년 일제 때 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단과 6층 탑신에서 청동거울과 나무함 은제사리함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탑 앞에는 석등 받침 유구가 보인다. 현존하는 신라 시대 거탑 중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형태가 아름운데 신라 5소경중 하나였던 중원경에 세워져 중앙탑으로 불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충주시 가금면을 중앙탑면으로 행정구역 명을 바꾸기도 하였다. 탑평리 칠층석탑 앞에는 충주 역사와 중원문화 보존 전승을 위한 충추박물관이 중앙탑 사적공원 내에 1986년 건립되었다.
충주박물관은(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중앙탑길 112-28)중앙탑사적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주의 역사 중원문화 보존 계승을 위하여 1986년 공립박물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1,2관으로 나뉘어져 있고 1관 충주 역사실에는 고려시대 청자탁잔 청자정병이 고고한 자태를 뽑내고 있고 쌍룡문동경과 선림보훈은 역사의 깊이를 느끼게 해줍니다. 조선시대 백자모정과 백제제기는 백자 특유의 은은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네요. 명현실에는 충주 명현 5위(우륵 김생 강수 신립 임경업)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어 충주가 충절의 고장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근현대 자료를 모아 놓은 충주민속실은 정겹게 느껴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이 전시되고 있네요. 2관 디지털 실감 체험실에서는 김생의 혼을 느껴볼 수 있고 가야금도 타볼 수 있고 태권도 체험이나 충주성 전투에 참가하여 디지털 화살 건으로 몽골병을 섬멸하여 김윤후장군의 혼을 위로해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으니 꼭 전투에 참가하시기 바랍니다.입장료가 무료라 더욱 좋습니다.충주 짱!
충주 고구려비는(忠州 高句麗碑.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280-11)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주 고구려비전시관으로 이전 설치되어 있습니다. 장수왕의 한강 유역 정벌을 기념하기위해 449년경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한반도 유일의 충주고구려비는 높이 203cm너비 55cm의 4면(전면10행 후면9행 좌면7행우면6행으로 각행23자로 대략 400여자로 추정)비석으로 용전리 입석마을 입구에 서 있던 입석 즉 선돌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국보 205호로 지정되어 충주 고구려비전시관 내 가장 깊숙한 곳에 보존 전시되고 있습니다. 아아~~~고구려!!! 북벌남정(北伐南征)의 웅장한 고구려의 기상이 깃들어 있는 이 비를 한없이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신라--네가 아니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저 드넓은 요동과 만주 시베리아까지 다 우리 영토가 되어 한반도 면적의 10배에 달해 몽골이나 중국도 감히 넘보지 못할 세계의 제국이 되었을텐데...고작 조공 바치는 동쪽 오랑캐로 전락하였으니 통탄스럽기만 하구나! 게다가 툭하면 왜나라마져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발해의 요녕성 고구려의 길림성과 흑룡강성이 다 우리의 고조선 고구려땅이고 역사인데 중국이 다 자기네 땅 자기네 역사라고 동북공정을 하며 떼를 쓰고 있으니 한스럽기 그지없다. 신라! 왜 네가 거기에서 나왔어? 하루빨리 남북통일을 이루고 가즈아~~~우리의 고토 고구려 땅으로. 광개토대왕을 따라서. 충주 고구려비전시관은 1관:입석마을 이야기 2관:고구려 이야기 3관:고구려비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외에도 고구려의 유산 역사 생활상 무용총 안악3호분 광개토대왕비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입장은 무료이고 Open시간은 09:00~18:00까지입니다.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은 국보 제 102호로 지정된 고려 목종때 홍법국사의 사리탑으로 높이는 2.55m이다.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던 것을 1915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실물 크기의 모형탑이 하천리에 세위져있다.둥근 공모양 몸돌의 특징으로 인하여 알독탑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하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탑으로 섬세한 조각과 단조로운 무늬가 조화를 이루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은 국보 제197호로 조선 태종 때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세워진 보각국사 사리탑이다. 탑은 기단과 탑신 지붕돌까지 전체가 8각형으로 조성되었는데 연꽃무늬 사자상 비룡상 무기를 들고있는 신장상 이무기상등이 역동적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화려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조선 초기 조형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 아닐 수없다.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앞 獅子 石燈)이 탑 앞에 세워져 있는데 203cm로 3단 아래 받침돌이 사자상으로 되어 있어 사자석등으로 불린다. 탑 뒷쪽으로 충주 청롱사지 보각국사탑비(忠州靑龍寺址普覺國師塔碑)가 서 있는데 석등 탑 비가 나란히 배치된 조선시대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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